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의사들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을 담은 ‘문재인 케어’ 추진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이들 가운데 2명은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됐다. 우연찮게도 둘 다 현 정부의 핵심 의료정책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문재인 케어’를 담당하고 있다. 91학번 정통령 과장은 현재 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이다. 의사의 수입을 결정하는 의료수가 책임자다. 의사단체가 문재인 케어에 ‘결사항전’하겠다고 나선 건 낮은 수가에서 강행하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때문이다. 문재인 케어의 주무 과장인 손영래 예비급여과장은 서울대 의대 92학번이다. 정 과장과 손 과장은 차례로 의대 학생회 대표를 맡기도 했다.
손 과장은 한때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2015년 보험급여과장을 맡았을 때 동네의원을 살리고 중증환자 치료비를 정상화하는 차원에서 3000억 원의 예산을 추가 투입했다. 당장 환자 단체와 건강보험 가입자 단체는 ‘의사 퍼주기’라며 손 과장을 맹비난했다.
필자는 이들과 같이 수업을 들었다. 최 회장은 학창시절 학생회나 서클 활동을 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도 늘 뒷자리에 앉아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수염을 길러 마치 도인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실제 당시에도 철학이나 종교 관련 책을 열심히 읽었다. 그렇게 조용하기만 했던 그가 최근 “감옥에 갈 각오로 투쟁하겠다”며 투사로 변신하자 주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는 이번 주 중대 결정을 해야 한다. 의사협회가 예고한 대로 27일 의료계 집단휴진을 강행하면 진짜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9일 필자와 만난 최 회장은 “이대목동병원 의사 구속으로 전공의와 병원들이 굉장히 격분해 있다. 파업을 결정하면 많이 동참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에게 큰 불편을 주는 파업은 마지막 카드인데 바로 선택해도 될지 고민”이라고 했다. 역풍을 우려하는 것이다. 실제 많은 국민들은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정부 정책에 왜 의사들이 파업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의사들은 원가에 못 미치는 수가 때문에 비급여로 돈을 벌고 있는데, 문재인 케어로 비급여가 없어지면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크다. 하지만 손 과장은 “많은 의사들이 문재인 케어를 잘못 알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3600여 개 비급여를 분석한 결과 필수적인 의료행위를 급여화하고 나면 약 40%가 비급여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며 “수가도 점진적으로 정상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 회장도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필수적인 의료행위의 급여화에 찬성하고 있다. 결국 양쪽의 얘기를 들어보면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 문재인 케어의 시행을 의료계 정상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와 의협이 머리를 맞댄다면 저(低)수가 문제 해결 방안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모든 분쟁을 해결하는 최상의 해법은 대화다. 그럼에도 대화에 실패하는 건 서로를 믿지 못해서다. 그런 점에서 의료계와 정부의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는 데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어 보인다. 양쪽을 대표하는 이들은 함께 공부하고, 고민해온 오랜 친구들이지 않은가.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