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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의 메디컬 리포트]문재인 케어를 두고 마주 선 ‘친구들’

입력 | 2018-04-11 03:00:00


지난해 12월 10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의사들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을 담은 ‘문재인 케어’ 추진을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 의사 파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전공의가 서울대 의대 91, 92학번들이다.

이들 가운데 2명은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됐다. 우연찮게도 둘 다 현 정부의 핵심 의료정책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문재인 케어’를 담당하고 있다. 91학번 정통령 과장은 현재 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이다. 의사의 수입을 결정하는 의료수가 책임자다. 의사단체가 문재인 케어에 ‘결사항전’하겠다고 나선 건 낮은 수가에서 강행하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 때문이다. 문재인 케어의 주무 과장인 손영래 예비급여과장은 서울대 의대 92학번이다. 정 과장과 손 과장은 차례로 의대 학생회 대표를 맡기도 했다.

손 과장은 한때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2015년 보험급여과장을 맡았을 때 동네의원을 살리고 중증환자 치료비를 정상화하는 차원에서 3000억 원의 예산을 추가 투입했다. 당장 환자 단체와 건강보험 가입자 단체는 ‘의사 퍼주기’라며 손 과장을 맹비난했다.

이랬던 손 과장이 이번엔 문재인 케어를 담당한다는 이유로 대한의사협회(의협)의 ‘공공의 적’이 됐다. 의사협회의 강경 투쟁을 이끄는 최대집 회장 당선인도 서울대 의대 91학번이다. 흥미롭게도 최 회장과 정 과장은 모두 의대 재학 시 1년 휴학을 해 한 학번 아래인 손 과장과 함께 공부했다. 동문수학한 이들이 20여 년 뒤 하나의 정책을 두고 양 극단에 선 셈이다.

필자는 이들과 같이 수업을 들었다. 최 회장은 학창시절 학생회나 서클 활동을 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도 늘 뒷자리에 앉아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수염을 길러 마치 도인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실제 당시에도 철학이나 종교 관련 책을 열심히 읽었다. 그렇게 조용하기만 했던 그가 최근 “감옥에 갈 각오로 투쟁하겠다”며 투사로 변신하자 주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는 이번 주 중대 결정을 해야 한다. 의사협회가 예고한 대로 27일 의료계 집단휴진을 강행하면 진짜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

9일 필자와 만난 최 회장은 “이대목동병원 의사 구속으로 전공의와 병원들이 굉장히 격분해 있다. 파업을 결정하면 많이 동참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에게 큰 불편을 주는 파업은 마지막 카드인데 바로 선택해도 될지 고민”이라고 했다. 역풍을 우려하는 것이다. 실제 많은 국민들은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정부 정책에 왜 의사들이 파업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의사들은 원가에 못 미치는 수가 때문에 비급여로 돈을 벌고 있는데, 문재인 케어로 비급여가 없어지면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크다. 하지만 손 과장은 “많은 의사들이 문재인 케어를 잘못 알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3600여 개 비급여를 분석한 결과 필수적인 의료행위를 급여화하고 나면 약 40%가 비급여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며 “수가도 점진적으로 정상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 회장도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필수적인 의료행위의 급여화에 찬성하고 있다. 결국 양쪽의 얘기를 들어보면 공통분모가 적지 않다. 문재인 케어의 시행을 의료계 정상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와 의협이 머리를 맞댄다면 저(低)수가 문제 해결 방안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또 의료계의 큰 불만 중 하나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일방적인 진료비 삭감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 현재 심평원은 진료비 지급을 거절하면서 그 이유조차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진료비가 삭감되면 의사는 환자에게 받은 치료비를 벌금처럼 토해내야 한다. 환자에겐 치료비를 돌려주며 부당과잉진료를 받았다고 통보해 해당 의사는 졸지에 양심불량자가 된다.

모든 분쟁을 해결하는 최상의 해법은 대화다. 그럼에도 대화에 실패하는 건 서로를 믿지 못해서다. 그런 점에서 의료계와 정부의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는 데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어 보인다. 양쪽을 대표하는 이들은 함께 공부하고, 고민해온 오랜 친구들이지 않은가.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