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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슬프도록 아름다운, 여성보컬의 괴성

입력 | 2018-04-11 03:00:00



2018년 4월 10일 화요일 맑음. 미성. #285
Arch Enemy ‘The World is Yours’(2017년)


인간은 왜 노래에 열광할까. 노래 중엔 왜 사랑 노래가 제일 많을까.

생물의 가장 강렬한 열망은 생존과 번식이다. 인간도 생물이다. 겉보기엔 성스러워 보이는 예술가와 위인이 성적 본능의 뒤틀린 실현, 자식의 안위에 관한 비리를 통해 끝내 추악한 이면을 드러내는 것을 본다. 2세의 탄생, 희생을 통한 인명 구조 이야기에 우리가 감동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일까. 생존과 번식은 밝든 어둡든 인간을 집중시키는 영원한 화제(話題)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진)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미국 항공우주연구센터 비밀 실험실의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와 남미에서 잡혀와 수용된 괴생명체(더그 존스)다. 언어장애인인 엘라이자는 음성언어를 뛰어넘어 괴생명체와 교감하고 사랑한다. 영화 후반, 엘라이자가 상상 속에서 목소리를 되찾아 노래하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음악계에도 음성언어에 대한 선입견을 부수는 목소리들이 있다. 이를테면 14일 내한공연을 여는 다국적 헤비메탈 밴드 ‘아치 에너미’의 음악에서 보컬은 노래 같지 않은 노래를 부른다. 위기에 처한 필사의 괴물처럼 시종 그르렁거린다. 뮤직비디오(QR코드)를 보면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뜻밖에 젊은 여성이다. 캐나다 출신 보컬 얼리사 화이트글러즈. 파랗게 물들인 머리에 케이티 페리 닮은 미모를 자랑하지만 입만 열면 소름끼치는 괴성을 내는 악몽 생산자다.

아치 에너미가 지닌 미(美)의 정수는 장르 이름인 ‘멜로딕 데스 메탈’에 들어 있다. 면도날 수만 개가 투하되듯 사납고 강렬한 사운드. 그 포화 속에서 전기기타는 때로 슬프도록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한다. 화이트글러즈가 내는 짐승 울음소리가 ‘늑대인간’이나 ‘미녀와 야수’ 설화처럼 슬프게 들리는 순간이다.

또 엉뚱한 상상을 한다. 영화 속 그 장면에서 엘라이자가 달콤한 재즈 곡 ‘You‘ll Never Know’ 말고 아치 에너미의 노래를 부른다면?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괴성으로.

‘세상의 규칙/그들은 바보. … 간절히 원한다면/세상은 당신의 것’(‘The World is Yours’ 중)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