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이 안에 있다!”
추리소설이 등장한 건 19세기부터였다. 이후 ‘셜록 홈스’ ‘미스 마플’ 시리즈 같은 인기 고전은 추리물의 다양한 유형을 선보여 왔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는 대사는 주로 ‘밀실살인사건’에서 등장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로, 애거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살인’ 등이 대표적이다.
폐쇄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대상자가 모두 용의선상에 오른다는 점에서 긴장감과 몰입도가 높다. 하지만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 등 현대 수사물을 섭렵한 대중의 추리실력은 웬만한 형사 뺨친다. 추리소설의 규칙을 정의한 S.S 반 다인의 ‘20법칙’이나 로널드 녹스의 ‘추리작법 10계’ 따위를 모른다 해도, 사건 개요를 보면 기본적 추리가 가능하다.
최근 한국도 난데없는 추리 극이 벌어지고 있다. 미세먼지 이야기다. 봄을 빼앗아 간 미세먼지 ‘주범’을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이 논란은 얼핏 밀실살인사건의 구조와 흡사해 보인다. 우선 미세먼지가 사람을 해치고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는 분명하다. 한반도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탐정처럼 사건을 해결해야할 정부가 있단 점도 같다. 게다가 자꾸 정부는 “범인은 이 안(국내)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전개는 영 엉성하다. 처음 정부가 미세먼지 주범으로 용의선상에 올렸던 것은 ‘서민 생선’ 고등어였다. 그러다 생계형 영업용 차량이 주를 이루는 경유차를 거론하며 퇴출을 하느니 마느니 했다. 최근엔 다시 야외 바비큐가 의심받고 있다. 여론의 반발과 조롱이 거세질 때마다 새로운 강력한 용의자들이 수사 선상에 올라온다.
사실 ‘셜록’의 왓슨 박사처럼 추리소설에서 탐정의 조력자나 경찰의 추리 수준이 독자보다 떨어지는 경우는 왕왕 있다. 작가들이 극의 재미를 위해 일부러 그렇게 설정한다. 하지만 사건 해결의 열쇄를 쥔 탐정이 독자보다 추리를 못하는 것은 정통 추리물이라 할 수 없다. ‘소년탐정 김전일’을 패러디한 B급 만화 ‘중년탐정 김정일’가 그런 예다. 이 만화에서 엉뚱한 촉으로 매번 생사람을 잡는 탐정은 툭하면 이렇게 소리친다.
“지금부터 움직이지 마! 움직이는 놈은 다 범인이야!”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