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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간 공씨책방 “단골 덕에 버티죠”

입력 | 2018-04-13 03:00:00

신촌서 이사해 3월 문 열어… 임대료 싸고 최대 5년 영업 가능
“오피스텔촌이라 걱정되지만 이 일대 헌책방 거리로 바꿀것”




지난달 30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안심상가에 다시 문을 연 ‘공씨책방’ 장화민 대표(왼쪽)와 남편 왕복균 씨가 신촌 창고에서 가져온 책을 정리하고 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뚝섬역에서 내려 성동교 사거리 쪽으로 500m쯤 걸었을까. 낯익은 녹색 바탕에 하얀 글씨의 간판이 보였다. 헌책방 ‘공씨책방’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장화민 대표(62)가 책 수백 권을 정리하느라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날 새벽 신촌 창고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장 대표는 “아직도 어수선한데 단골들이 찾아줘서 힘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1세대 헌책방으로 불리던 공씨책방은 지난해 10월 새로 바뀐 건물주가 월 임차료를 13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올려 달라고 하면서 문을 닫게 됐다. 결국 지난달 26일, 46년간 자리를 지켰던 서대문구 창천동에서 동쪽으로 12km 떨어진 성동구 성수동1가 ‘안심상가’로 옮겨 문을 열었다.

안심상가는 공씨책방처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원래 있던 곳에서 밀려난 상인들에게 평당 임대료를 주변보다 최대 70% 저렴하게 공간을 제공하는 상가다. 성동구에서 직접 운영한다. 계약금과 권리금이 없고 임대료 상승 없이 최장 5년간 영업할 수 있다.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공씨책방은 비슷한 녹색 간판을 달고 책도 그대로 옮겼지만 수십 년 단골 눈에는 어딘지 낯설다고 한다. 오래된 책의 묵은 향도, 켜켜이 쌓인 책을 뒤적이며 ‘보물’을 찾아보려는 학생도 잘 보이지 않는다.

장 대표는 “이곳 주변은 직장인이나 맞벌이 부부가 사는 오피스텔이 대부분이어서 여기까지 책을 사러 올까 싶어 걱정도 된다”라면서도 “책 이벤트를 열어 이 일대를 헌책방 거리로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공씨책방은 2월 안심상가 입주 업체 공모에 신청했다. 당시 성동구는 입주 업체 3곳을 뽑으려 했는데 공씨책방을 비롯해 18군데가 몰렸다. 예상 밖이었다. 구는 이 18개 업체가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피해를 입었는지 살펴봤다. 실제 임대료 상승분을 비교하고 현장 조사를 했다. 그렇게 3개 업체를 뽑았다.

공씨책방과 마찬가지 처지였던 성동구청 앞 ‘윤스김밥’도 이곳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우연히 손님이 들고 온 구청 소식지에서 안심상가 공모를 봤다고 한다. 윤복순 대표(59·여)는 “구청 앞에서 15년간 김밥과 떡볶이를 만들어 팔았는데 새 건물주가 월 임차료를 100만 원 더 올려 달라고 했다. 사정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자식 학비와 결혼자금을 마련할까 걱정하던 차에 안심상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구는 젠트리피케이션 피해를 호소하는 상인들의 입주 신청이 예상보다 많아서 안심상가를 더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달 말 성수동2가에 두 번째 안심상가가 문을 연다. 문구점과 청년들이 하는 향수공방 등이 들어선다.

문제는 점포 매입을 위한 예산이다. 상권이 활성화된 곳의 상가건물을 사들이기에는 예산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안심상가는 역세권에서 벗어나고 유동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곳에 생기는 경향이 있다. 구는 건물 높이 제한을 완화해주는 대신 점포를 기부채납받는 방식으로 안심상가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구 관계자는 “안심상가에 둥지를 튼 소상인들이 예전처럼 활기차게 영업할 수 있도록 구청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와 지역 이벤트를 열어 상권을 활성화하겠다”라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