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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열기구 150m ‘질질’… 숨진 조종사는 조절기 놓지않았다

입력 | 2018-04-13 03:00:00

제주서 착륙중 강풍에 밀려 탑승객들 튕겨나가 12명 부상
작년 5월 영업 1년만에 사고




12일 오전 8시 10분경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물영아리오름 동북쪽 목장지대의 높이 7∼10m 삼나무 숲에 열기구가 걸렸다. 착륙하려다 순간 불어닥친 강풍에 숲으로 떠밀렸다. 조종사이자 열기구 업체 대표인 김종국 씨(55)는 탑승객 12명에게 “모두 고개를 숙이고 앉아 달라”고 말했다. 이들은 일제히 자세를 낮췄다.

다시 상승한 열기구는 인근 풀밭에 닿았다가 솟아오르기를 서너 차례 반복하며 150m가량 끌려갔다. 이 과정에서 탑승객 12명 모두 기구에서 튕겨 나갔다.

열기구는 삼나무 숲에 걸려서야 멈췄다. 홀로 남아 열기구를 조종하던 김 씨는 의식을 잃고 머리에서 피를 흘린 채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삼나무에 머리를 부딪친 것으로 추정된다. 고사리를 캐던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119 구조대는 김 씨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탑승객 대부분은 찰과상이나 골절상을 입었다. 양모 씨(40)는 “기구가 지면과 닿는 순간 충격 때문에 몸이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헬멧이나 안전벨트 같은 안전장비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열기구는 앞서 이날 오전 7시 35분경 제주시 조천읍 와산리 마을운동장에서 출발했다. 당초 구좌읍 송당리에서 이륙하려다 바람이 다소 강해 출발지를 바꿨다. 바람을 따라 가다 지상지원팀과 교신하며 적당한 평지에 착륙하기로 돼 있었다. 순간 초속 10m가량의 강풍이 불었지만 비행은 순조로웠다고 한다.

사고 열기구는 높이 35m, 폭 30m로 국내에서 가장 크다. 영국 열기구 전문제작업체 캐머런 벌룬스 제품이다. 2015년 국내에 도입했지만 제주지방항공청이 3차례나 비행 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바람이 거세고 돌풍이 많아 경로를 이탈할 확률이 높고, 풍력발전기나 고압송전탑 같은 장애물이 있어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열기구 업체 측은 관련 단체와 유관기관 지원을 받아 지난해 4월 항공레저스포츠사업 등록 허가를 받고 같은 해 5월 영업을 시작했다. 열기구 이륙 장소를 4곳으로 제한하고 바람은 초속 3m 이하, 비행고도는 150m 이하라는 조건이었다. 비행은 하루 대기 상태가 가장 안정된 일출 무렵 한 번만 한다. 1인당 39만6000원이다.


경찰은 열기구 업체 측이 초속 3m가 넘는 바람이 불었는데도 비행을 강행한 건 아닌지 조사하고 있다.

숨진 김 씨는 캐나다, 아프리카에서 30년간 관광용 열기구를 조종했고 대형 열기구 비행 경력도 1000시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열기구 추락사고는 이번이 두 번째다. 1999년 4월 제주 열기구대회에서 강풍에 떠밀린 열기구가 고압선에 걸려 추락해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