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191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나라를 망친 책임은 고종과 명성황후에게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미국 공사 알렌이 “한국 국민이 가련합니다. 내가 일찍이 구만리를 돌아다녀 보고 위아래로 4000년의 역사를 보았지만 한국 황제와 같은 인간은 또한 처음 보는 인종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나라를 뺏긴 임금 고종,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고종의 글씨는 많이 남아 있는데 한마디로 서툴고 힘이 약하다. 도판 글씨는 고종이 63세이던 1915년에 쓴 것이다. 44년간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졌던 사람이 쓴 글씨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미숙하다. 세종이나 정조의 글씨 수준까지 기대하지는 않더라도 국왕의 글씨로는 미흡하며 난세의 국왕으로서는 더 그렇다. 고종은 판단이 빠르고 행동에 거침이 없는 이토 히로부미에게 밀렸다. 이완용, 조중응 같은 기회주의적인 신하들의 등쌀에 시달리는 신세였을 것이다.
모음 마지막 부분에서 삐침이 있고 입구(ㅁ) 자의 마지막도 강하게 닫혀 있고 세로선이 긴 것으로 보아 일반적인 업무처리는 꼼꼼하게 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세일수록 의지가 강하고 비범한 능력을 가진 리더가 필요하다. 그런데 고종의 글씨는 정사각형의 형태인 데다가 경직되고 유연하지 못하다. 이런 인물은 순수하고 바르지만 고지식해서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어렵다. 특히 입구(ㅁ) 자 윗부분의 경직된 형태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지 못했음을 알려준다. 위 여백, 글씨 형태, 필압으로 보아 용기가 부족하고 적극적이지도 못하며 유약하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