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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통령, 현충원 묘지 338㎡… 美 대통령 규정의 75배

입력 | 2018-04-14 03:00:00

[토요기획]국립묘지 ‘제왕적 묘역’ 논란 왜?
대통령 묘역도 제왕적인 한국




《살아있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놓고 헌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과 대전 국립현충원에 묻힌 전직 대통령 5명의 묘역 총면적은 1690.5m²(약 512평), 대통령이 아닌 안장자 1명에게 허락된 면적(3.3m²·약 1평)과 비교하면 무려 512 대 1의 격차다. 반면 미국과 영국 등은 대통령과 장군, 사병을 차별하지 않는다. 오직 국가에 헌신했는지만 따진다. 한국 대통령 묘소의 전말을 해부한다.》



“산봉우리 하나, 물 한 방울도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은 곳이 없다. ‘목마른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형상’(渴形象)의 명당 중 명당”, “산(山)은 군인들이 아침 조회를 하는 듯하고, 땅 밑의 여러 갈래 물줄기(水)는 교류해 생기가 넘친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홈페이지에 소개된 현충원의 풍수(風水)다. 앞으로는 한강이, 뒤로 관악산 공작봉이 병풍을 친 이 명당에 역대 대통령 4명이 잠들어 있다. 이 중 가장 높고 깊은 곳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이 있고, 이어 이승만, 김대중(DJ), 김영삼(YS) 전 대통령 묘역이 차례로 나온다.

서울과 대전 국립현충원에 잠든 역대 대통령 5명 묘역 총면적은 1690.5m²(약 512평). 대통령이 아닌 안장자 1명에게 허락된 면적(3.3m²·약 1평)과 비교하면 512 대 1의 차이다. 이렇듯 사후에도 대통령과 일반인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다. 역사적으로 엄격한 정치적 위계를 보였던 한국 국립묘지의 단면이기도 하다. 혹자는 이를 ‘제왕(帝王)적 국립묘지’라 부른다.

○ 1곳 공사비 7억∼10억, 관리비 4억5000만 원

1965년 7월 미국 하와이에서 병사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묘 크기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없던 당시 일반 군인 묘역보다 훨씬 큰 363m²(약 109평)로 꾸려졌다. 묘두름 돌, 상석, 향로대, 묘비, 추모비, 헌시비, 사자상 등이 갖춰졌다. 헌시비는 하와이 한인동지회가 하와이 근해에서 채취한 돌로 건립됐다. 1992년 3월 서거한 프란체스카 도너 리 여사도 가족장으로 이곳에 합장됐다.

서울현충원의 가장 높은 곳엔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묘소가 있다. 1979년 안장된 박 전 대통령의 묘소 면적은 580m²(약 175평). 역대 대통령 묘소 크기 중 압도적 1위다. 묘두름 돌, 상석, 향로대, 묘비, 추모비 등이 있다. 이, 박 전 대통령 묘역 공사비는 자료가 없어서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동지이자 숙명의 라이벌이던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각각 2009년과 2015년 안장됐다. 묘역 크기는 DJ(264m²·약 79.8평)가 YS(258.5m²·약 78.1평)보다 조금 더 크지만 공사비는 YS(9억8670만 원) 쪽이 DJ(7억7000만 원)보다 더 들었다. 두 전 대통령 묘역 면적이 다소 줄어든 것은 2006년 국립묘지법이 개정돼 국가원수 묘역이 264m²(약 80평) 이내로 제한된 결과다.

묘역 관리비도 ‘억’ 소리가 난다. 서울현충원은 “전체 면적 관리비에서 국가원수 묘역 면적을 비교하면 연간 총 4억5000만 원(경비, 청소, 조경 관리)이 든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대전현충원 국가원수 묘역 관리비도 3742만 원(2016년 기준)이 든다.

전직 대통령은 대전보다는 서울에서 영면하길 원했다. 최규하 전 대통령만 2006년 유일하게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서울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이 가득 찼다는 이유로 유가족을 설득한 결과였다. DJ를 서울현충원에 안장하려는 장례 계획에 대한 국무회의 석상에서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은 “서울현충원 국가원수 묘지가 만장돼 최 전 대통령 서거 때 유가족을 설득해 대전으로 모셨다. DJ가 서울현충원에 안장되면 예전 결정을 뒤집는 선례를 남기고, 추후 다른 대상자들이 계속 서울에 안장해 달라고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15년 서거한 YS도 국가원수 묘역 인근의 터를 활용해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반면 대전현충원은 국가원수 묘역 4곳을 조성했지만 3곳이 아직 ‘미분양’ 상태다.

국립묘지가 아닌 다른 곳에 안장된 전직 대통령은 윤보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국립묘지를 뿌리치고 충남 아산의 해평 윤씨 묘역에 잠들었다. 생전 조상들이 잡아놓은 유명한 명당으로 불린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 따라 화장한 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안장돼 있다.

국립묘지 밖에 안장됐다고 국가의 지원이 없는 건 아니다. 국회가 지난해 3월 국립묘지 외의 장소에 안장된 전직 대통령 묘지 관리 비용 등을 지원하는 전직대통령 예우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 국회예산정책처는 법이 통과되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11억800만 원(연평균 2억2150만 원)이 든다고 내다봤다.

○ 사후에도 유지되는 군(軍) 계급

한국 국립묘지는 죽어서도 계급 차이가 난다. 계급별로 묘역도 달라 장군-장교-사병이 다른 곳에 묻히고 있다. 게다가 장군 묘역과 사병 묘역은 멀리 떨어져 있다. 장군 묘역은 1인당 26.4m²(약 8평). 시신 안장과 봉분이 허용된다. 반면 사병 묘역은 3.3m²(약 1평)에 화장한 유골만 안장하며 봉분은 없다. 무공훈장을 받았거나 교전 중 사망했더라도 영관급 이하는 화장된다.

2006년 법 개정으로 장군 묘역의 화장 안치 및 1기 면적을 3.3m²로 했다. 그러나 부칙에 ‘장군 안장 묘역이 소진될 때까지는 시신 매장 및 26.4m²(약 8평) 허용’이라는 단서조항을 뒀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장군들의 시신 매장과 봉분 조성이 합법화됐다.

서울현충원 내 장성 묘역은 만장된 지 오래다. 남은 것은 대전현충원의 장군 묘역 98곳. 현재 추세라면 2020년 4월경 장군 묘역이 만장될 것으로 대전현충원은 전망했다.

○ 계급, 지위 차별 않는 해외 국립묘지

한국 국립묘지의 발원은 이승만 대통령 때 제정된 ‘군 묘지령’에서 출발했다. 국립묘지가 군인 묘지라는 뿌리로 출발하면서 장군, 사병 묘역이 구분됐다. 이후 안장 대상이 확장돼 국립묘지로 승격됐지만 면적에 계급 간 차별은 유지됐다. 국립묘지에서 국민 통합과 평등의 성격보다 신분과 위계질서가 부각되는 것은 이런 태생적 배경에서 비롯된 셈이다.

반면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묘에는 봉분과 묘비가 없다. 묘역 중앙에 케네디를 추모하는 ‘불멸의 불꽃’이 타고 있을 뿐이다. 또 미국 대통령 대부분은 사후 고향에 묻힌다. 대통령, 장군, 장교, 사병 등 안장 대상자에게 동일한 묘지 면적(4.49m²·약 1.3평)이 제공되는 게 원칙이다. 신분에 따라 별도 매장 구역이 없고 사용 순서에 따라 지정된다. 무명용사의 비석에는 “여기 오직 신만이 알고 있는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미국 용사가 잠들어 있다”고 적혀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 결과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의 국립묘지는 장성과 사병을 구분하지 않고 1인당 4.95m²(약 1.5평)로 일정했다. 프랑스 파리 팡테옹 국립묘지는 프랑스를 빛낸 위인들의 묘지지만, 신분에 따라 묘지 크기를 구분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 묘 크기가 예(禮)인가

국가에 대한 공헌 측면에서 국가원수는 그 자체로 역사성과 상징성이 있다. 그러나 묘역 크기가 수많은 무명의 헌신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조성돼 온 관행은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퇴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좋지만 왕조 국가의 왕릉처럼 크게 지을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장례 문화가 화장으로 급변하는 추세에 ‘크기’에 집중된 대통령 묘역 조성 기조를 고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국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김중로 의원은 미국과 동일하게 신분을 구분하지 않고 국립묘지의 1인당 묘지 면적을 정하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도 그 역시 육군 장성 출신이어서 사후 국립묘지 장성묘역(8평)에 안장될 수 있다. 김 의원은 “나도 사후 병사들 묘역에 묻히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장군이 사병 묘역에 안장된 것은 2013년 11월 별세한 채명신 예비역 육군 중장(초대 주월남 한국군 사령관)이 유일하다.

김 의원은 “진정한 적폐 청산은 국민 생활에 스며든 잘못된 관행과 관습을 깨뜨리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적폐를 청산해야 국민적 지지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묘지 면적과 안장 방법을 놓고 신분과 계급에 따라 차별하는 것은 사후에도 갑질을 하는 것과 같다. 또 전직 대통령에게 제공되는 과도한 예우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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