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이끄는 사람들]현대중공업
국내외 조선 업계에서는 경기 호전에 따른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업체로 현대중공업그룹을 꼽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 건조 기술을 보유한 데다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 계열 3사의 생산 능력이 국내외 경쟁업체들을 압도하고 있어서다. 특히 모기업인 현대중공업의 사업 분할과 지주회사 체제 전환으로 투자 효율성이 높아지고 경영권이 안정된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여기에다 지난달 1조2350억 원 규모의 유상 증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재무구조가 개선된 것도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30일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로 선임된 권오갑 부회장은 그룹 내 최고참 경영인이다. 1978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40년째 현대중공업그룹과 인연을 맺고 있다.
그는 글로벌 조선 경기 침체로 위기에 빠진 현대중공업을 정상화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2014년 9월 권 부회장이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으로 부임했을 때 회사는 영업 손실 규모가 3조50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그는 취임 직후 “회사가 정상화될 때까지 급여를 모두 반납하겠다”며 무보수 경영을 선언했다. 또 임원을 대폭 줄이는 한편 성과 연봉제를 도입하는 등 임금 체계를 개선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가 반발해 파업에 들어갔지만 권 부회장은 끝까지 원칙을 고수해 2016년과 2017년 2년 치 임금·단체협상을 타결했다. 또 현대중공업 비(非)조선 사업 분할과 지주사 체제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마무리했다. 권 부회장은 “지주사 출범 이후 계열사들이 전문 경영인 체제를 확고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책임 경영’을 강조했다.
임원 식당을 없애고 저녁마다 생산 및 사무기술직 직원들을 초청해 같이 식사하는 등 스킨십 경영을 중시한다. 업무용 차량(에쿠스)을 직원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경조사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자상한 면모도 갖고 있다. 현대오일뱅크 사장 시절 국내 정유 업계에서 가장 작은 회사인 현대오일뱅크를 영업이익률 1위 회사로 키우기도 했다.
○ 조선업 부활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이곳은 단일 조선소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가삼현 현대중공업 그룹선박해양영업본부 사업대표(사장)는 직책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현대중공업그룹 내 조선 3사의 수주를 책임지고 있다. 가 사장의 하루 일과는 오전 5시 출근과 함께 운동으로 시작한다. 전 세계가 영업 무대인 만큼 체력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해에는 전 세계를 돌며 글로벌 발주처들을 대상으로 영업 활동을 펼쳐 수주 목표를 30% 초과 달성했다. 올해도 지난해보다 30% 높은 132억 달러(약 14조 원)를 수주 목표로 세웠다. 1993년 현대중공업그룹 최대 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선임됐을 때 축구협회로 파견 나가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대미포조선 대표이사인 한영석 사장은 선박 설계 및 생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 출신. 2015년 현대중공업 생산본부장에 오른 후 다양한 공법 개선과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냈다. 그는 “답은 언제나 현장에 있다”고 강조하며 매일 아침 설계 및 생산 현장을 직접 둘러본다. 지난해 전 세계 조선업계가 수주 절벽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당초 수주 목표를 40% 초과 달성했다. 모범적인 노사관계를 통해 21년째 무분규를 이끌어내 지난해 2월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로부터 ‘한국노사협력대상’을 받기도 했다.
윤문균 현대삼호중공업 대표이사 사장도 엔지니어 출신이다. 생산 부문 말단사원부터 시작해 설계, 기획, 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지난해 6월 러시아 즈베즈다조선과 합작회사인 ‘즈베즈다-현대’를 세우며 러시아 시장에도 진출했다.
▼정유·전기·건설기계·태양광 등 계열사 이끄는 최고경영진▼
조선 편중 사업구조 전환기, 새로운 성장동력들
비(非)조선 계열사를 이끄는 대표주자는 문종박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사장이다. 회사 사업 구조 다각화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는 현대중공업 싱가포르 법인장과 재정 담당 이사, 현대중공업 중국지주사 총괄 대표 겸 중국 현대금융리스 대표를 거쳤다. 현대오일뱅크에서는 상업용 터미널 사업과 윤활기유 사업 진출을 이끌었다. 또 현대오씨아이를 설립해 제철화학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이 덕분에 현대오일뱅크 전체 영업이익에서 비(非)정유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9%에서 지난해 33%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국내 정유업계 최초로 미국산 원유를 도입하는 등 수입처 다변화와 탄력적인 재고 조절로 사상 최대 영업이익(1조2605억 원)을 냈다.
주영걸 현대일렉트릭 대표이사 사장은 1983년 현대중전기(현대일렉트릭의 전신) 입사 후 품질, 생산, 설계 등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으며 중전기기 기자재 국산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현대일렉트릭이 현대중공업에서 독립하자마자 회사 조직을 △파워본부(변압기, 고압차단기) △인더스트리본부(배전반, 전력제어시스템, 정보통신기술 에너지 솔루션) △드라이브본부(전동기, 발전기, 인버터) △연구개발(R&D)본부 △경영본부 등 5개 본부로 재편했다. 이후 각 본부가 자율성을 갖고 성과에 책임지도록 ‘기업 내 기업(CIC·Company in Company)’ 체제로 전환시켰다. 그는 지난해 매출 대비 3% 수준이었던 R&D 투자 규모를 2021년까지 5%대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공기영 현대건설기계 대표이사 사장은 1987년 입사 후 30여 년간 건설장비 분야에서만 근무한 전문가. 회사 생활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 ‘해외 영업통’으로도 불린다. 1992년 미국 시카고법인 파견 시절 건설기계 딜러망을 개척해 연간 30대 수준이던 판매량을 3000대 수준으로 늘렸다. 2007년 인도법인장 시절에는 현지 시장점유율 순위를 2위까지 끌어올렸다.
지난해 4월 사장 취임 후에는 딜러개발팀부터 꾸려 해외 신규 거래처 구축에 나섰다. 이 덕분에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이 중국, 러시아, 인도 등 신흥국 시장은 32.8%, 북미 유럽 등 선진국 시장은 27.7%에 이를 정도로 큰 성과를 올렸다. 내수시장에서도 국내 최초로 중고 건설장비 경매와 창고형 할인매장 내 굴착기 전시 판매 등 공격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쳐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32.4% 늘어났다.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인 정기선 부사장은 현대중공업그룹 최대 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다. 2008년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입사했다가 유학을 떠나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2011년 현대중공업 기획실 수석부장으로 다시 입사해 상무, 전무를 거쳐 이번에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가 됐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선박 엔진 및 플랜트 분야 애프터서비스가 주요 사업 분야. 수주 절벽에 시달리는 조선업계와 달리 선박 개조 및 유지 보수 시장은 환경 규제로 일감이 늘어나고 있는 분야다. 따라서 새로운 수익 창출과 지속적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정 부사장의 판단에 따라 회사가 출범했다. 그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선박 생애주기 관리 서비스’도 고도화해 수출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과 현대중공업 선박해양영업본부 부문장도 함께 맡고 있다.
정 부사장과 함께 현대글로벌서비스 공동 대표이사인 안광헌 부사장은 2016년 11월 대표로 부임해 지난해 매출 2000억 원, 수주 3억 달러를 달성했다. 기계공학과 출신인 그는 현대중공업의 독자 모델인 ‘힘센 엔진’ 개발을 주도했다. 그 공로로 2012년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생산기술·중형엔진 생산 담당 임원(상무)이 된 후 100% 수입에 의존하던 드릴십과 해양플랜트 엔진을 힘센 엔진으로 대체했다.
강철호 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 대표이사(부사장)는 외교관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1992년부터 주(駐)칭다오(靑島) 한국총영사관과 주싱가포르 한국대사관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4년 현대중공업 기획실에 입사했다. 2006년 현대중공업 중국 지주회사 설립을 주도하는 등 그룹 내 대표적인 ‘중국통’이다. 2010년부터 중국 지주회사 대표를 맡아 현대중공업의 중국 사업을 총괄했다. 2011년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 10주기를 기념해 출범한 ‘아산나눔재단’ 초대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