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한국이나 일본이나 영업비밀이나 지식재산권에 대한 개념이 느슨한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다. 하지만 공기처럼 사소한 것에도 중요한 영업비밀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앞선 기술이 집적된 시설을 꼽으라고 한다면 삼성전자 평택공장도 유력한 후보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중 최첨단인 4세대 3차원(3D) V낸드플래시가 생산된다. 핵심 기술이 집약된 만큼 이곳의 보안시스템과 절차는 철통같다. 임직원들조차도 휴대용 저장장치는 물론 종이 한 장도 가지고 출입할 수 없다. 안에서는 특수처리된 보안용지만 사용해야 한다. 보안용지를 갖고 나가려 하면 입구에 설치된 감지기가 바로 적발해낸다.
물론 산업재해를 다투려는 노동자의 권리는 존중받아야 한다. 노동자가 소송을 하는 데 필요한 정보라면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노동자의 권리에 제약이 가해져서는 안 된다. 삼성전자 측도 반도체 관련 직업병 당사자나 가족, 변호사 등 관계자들이 해당 보고서를 열람하고 그 결과에 대해 공증을 받는 것에는 전혀 반대하지 않고 있다. 쟁점은 ‘일반 공개’ 여부다.
기업 간 첨단기술 쟁탈전이 심해지면서 각국은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1996년 제정된 ‘경제스파이법’의 벌칙을 2012년 크게 강화했고, 2016년에는 영업비밀을 침해당하는 기업의 권리를 더 강화한 영업비밀보호법을 발효시켰다. 일본도 2015년 관련법을 개정해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처벌 범위를 크게 확대했다. 자기 나라 첨단기업의 영업비밀을 정부부처가 나서서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겠다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달 16∼18일에는 보고서 공개 여부를 둘러싸고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권익위원회 수원지방법원 등의 결정 절차가 잇따라 예정돼 있다. 우리가 5년 뒤, 10년 뒤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국가기관이 한 곳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