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인권감시단체 위반기록센터(VDC)가 추정한 7일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 시간과 장소가 표시된 지도. 이날 오후 시리아 정부군의 러시아제 헬리콥터가 화학물질이 담긴 통폭탄을 두 차례 투하해 최소 45명이 숨진 것으로 VDC는 추정하고 있다. 시리아 위반기록센터(VDC) 제공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시리아 내전 구호단체 ‘하얀 헬멧’이 트위터에 공개한 현장 사진은 충격적이었다. 사망자들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려 있었고, 코와 입으로 하얀 거품이 흘러나왔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여성과 어린이였다. 6명의 생존자는 동공이 수축되고 호흡이 느려진 상태로 경련을 일으켰다. 영국의 데이터 탐사 웹사이트 ‘벨링캣’은 “(공개된 영상, 사진 등) 이용 가능한 증거를 분석한 결과 두마이르 군용비행장에서 날아온 헬리콥터가 떨어뜨린 가스통에 의해 최소 34명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 세계가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에 분노했다. 미국은 영국, 프랑스와 공조해 13일 화학무기 의심 시설 3곳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105발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후원자인 러시아와 이란이 서방의 이번 공습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확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이 ‘신(新)냉전’ 구도 아래 제3차 세계대전으로까지 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화학무기가 대량살상무기(WMD)로 위력을 떨치기 시작한 건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독일군은 1915년 4월 22일 벨기에 이프르 전선에서 프랑스와 영국군의 참호에 염소가스를 살포해 연합군 50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국제사회는 1차 대전이 끝난 뒤 1925년 전시 생화학무기의 사용을 금지한 제네바 의정서를 체결했지만 화학무기의 확산과 사용을 막지 못했다. 2차 대전 때는 더욱 치명적인 화학무기가 개발됐다. 화학무기가 적은 비용, 낮은 기술력으로도 대량 생산이 가능한 탓에 ‘가난한 자들의 핵무기’로 불리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당시 독일은 일명 ‘독일 가스(German gas)’로 불리는 G계열 타분(GA), 사린(GB), 소만(GD) 등 신경작용제를 만들었다. 살충제와 비슷한 성분을 가진 신경작용제는 인체의 중추·자율신경계통을 교란해 짧은 시간 내 사망에 이르게 한다.
미국과 소련(러시아)의 냉전 시기에는 화학무기 개발 경쟁으로 사린가스보다 독성이 100배 이상 강력한 V계열(Venomous·맹독성의) 신경작용제가 탄생했다. 지난해 2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에 사용된 VX는 가장 강력한 신경작용제로 알려져 왔다.
아직도 북한과 이집트, 이스라엘, 남수단 등 4개국은 CWC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경우 2016∼2017년 시리아에 50t 상당의 화학무기 생산 재료를 공급해온 정황도 드러났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에 따르면 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화학무기는 VX를 비롯해 25종, 최대 5000t에 달한다. VX 신경작용제 560kg을 실은 스커드 미사일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떨어지면 최대 12만 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최근 급물살을 탄 한반도 비핵화 논의에 북한의 생화학무기 해체도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이유다.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