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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희망 꽃피운 카네이션

입력 | 2018-04-18 03:00:00

서울 마포 노인일자리 ‘손끝공방’
외롭고 형편 힘든 평균 69세 11명… 5월 판매위해 분주한 손길
“툭하면 화상에 상처투성이지만 공방 다니면서 살 힘 얻었다오”




17일 서울 마포구 ‘손끝공방’에서 평균 나이 69.2세 어르신들이 손수 만든 카네이션 브로치를 가슴에 달고 포즈를 취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

꽃향기 나지 않는 꽃 공방이 있다.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주택가 골목 깊숙이 있는 합정동주민센터. 이 3층짜리 건물 뒤편에 16.5m²(약 5평) 크기 컨테이너박스가 있다. 안으로 들어서자 어르신 5명이 탁자에 둘러앉아 붉고 푸른 공단(貢緞)을 열심히 접고 있다. 선임 격인 김선임 씨(70·여)가 눈대중으로 붉은 공단을 16cm 잘랐다. 물결 모양으로 동그랗게 말자 활짝 핀 카네이션 같다. 달아오른 글루건(접착제)으로 미리 접어놓은 녹색 공단 리본과 옷핀, 집게를 붙이자 근사한 카네이션 브로치가 완성됐다.

이곳은 마포구와 우리마포시니어클럽이 노인 일자리를 위해 만든 ‘손끝공방’이다. 2014년 3월부터 인생 2막을 꿈꾸는 어르신들이 모여 카네이션을 만들어 판매한다. 가정의 달 5월을 앞둔 이맘때가 가장 바쁘다. 5월 한 달을 위해 남은 11개월 일하는 셈이다.

이렇게 카네이션 ‘한 송이’를 만드는 데 꼬박 15분이 걸린다. 평균 나이 69.2세인 이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공단을 자르고 붙이는 과정을 반복하느라 손끝은 상처투성이고 글루건을 다루다 화상도 자주 입는다. 김 씨는 “눈이 금세 침침해지고 어깨도 뻐근하지만 우리가 만든 카네이션을 누군가 가슴에 다는 상상을 하면 힘든 줄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5시간 동안 카네이션 약 400개를 만들었다.

손끝공방은 마포구가 벌이는 노인일자리사업 50개 가운데 여성들이 많이 선호한다. 하루 평균 5시간 일해 몸에 부담이 없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서다. 현재 남녀 11명이 일하고 있다. 현재 구 예산 2000만 원으로 4명을 추가 고용할 수 있다.

김현숙 씨(66·여)는 남편과 갑작스레 사별한 뒤 온종일 방에서 누워만 지냈다. 문득 생전에 자주 꽃을 사다주던 남편 모습이 떠올랐다. 꽃을 갖고 일을 한다면 덜 아플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손끝공방을 찾은 지 3년이 흘렀다. 김 씨는 “여기가 아니었다면 우울증이 더 심해졌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요통 때문에 15년간 다니던 직장을 3년 전 그만둔 양문자 씨(69·여)는 두려워졌다. 아침에 일어나도 어디에 나갈 데가 없었다. 이러다 치매라도 걸릴 것 같았다. 양 씨는 “이 일이 나를 살렸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 해 평균 카네이션 6만 개를 개당 1200원에 판다. 주로 교회나 복지관을 비롯한 사회복지시설이 거래처다. 올해 목표는 6만5000개. 그러나 주문량은 약 3만2000개뿐이다. 목표 수량을 채울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인상된 최저임금을 맞추지 못할 정도로 판매량이 저조하면 공방은 문을 닫을 수도 있다. 시니어클럽 직원들이 홍보전단지를 만들어 지난해 약 1000개 기업에 마케팅을 벌였지만 구매 회신은 190개사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한 송이에 1000원 하는 중국산 카네이션이다. 구 관계자는 “어르신의 눈물과 땀이 밴 카네이션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했다. 꽃향기 같은 이들의 땀내가 공방에 머물러 있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