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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명건]공짜보다 비싼 것은 없다

입력 | 2018-04-18 03:00:00


이명건 사회부장

‘휘유∼.’

청와대 관계자는 대답 대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김경수 의원이 댓글 여론 조작 사건에 얽혔는데 청와대는 괜찮겠느냐”고 물었더니 한참을 그랬다. 사건 주범 드루킹(온라인 닉네임)의 주오사카 총영사 후보 추천이 김 의원을 통해 청와대에 전달된 사실이 공개되기도 전이었다.

뜸을 들이던 그는 “김경수와 김기식은 차원이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낙마 전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경질론이 비등한 때였지만 그 문제는 김 의원 때문에 청와대가 입을 타격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김 의원은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이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2002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도운 뒤 청와대에 들어갔다.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을 거쳐 비서실장이 됐고, 김 의원은 행정관을 지내다 비서관으로 승진했다. 김 의원은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각각 문재인 후보 수행팀장과 캠프 대변인을 맡았다.

드루킹이 김 의원을 처음 찾아간 건 대선을 1년여 앞둔 2016년 중반.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돕는 온라인 댓글 활동을 했다. 또 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으로 김 의원에게 알렸다. 그리고 문 대통령이 당선된 뒤 김 의원에게 인사 청탁을 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거부하자 드루킹은 청와대와 여당 비판 댓글 순위를 불법적으로 끌어올렸다.

‘선거 기여→승리→대가 요구→거부→배신.’ 전형적인 정치판의 케케묵은 스토리 라인이다. 그래서 김 의원은 억울해할지 모르겠다. ‘나도 남들처럼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 갔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 전까지 대선과 총선을 두 번씩 치른 김 의원이 그 가능성과 위험성을 몰랐을 리 없다.

“선거 치르고 나면 몇 년 동안 빚쟁이가 된다.”

김 의원의 친문(친문재인) 진영 선배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이미 2002년 대선 당시 이렇게 토로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다.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일 때 민정수석을 했다.

문 대통령은 직접 쓴 책 ‘운명’에서 이 전 수석의 ‘선거 빚쟁이론’을 거론하며 “(2002년 대선 승리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뭘 어떻게 도왔는지 알 수 없는 분들이 오히려 공치사를 하며 만나자고 했다. 감사 인사를 적절하게, 그러면서 분별 있게 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피곤한 일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드루킹은 김 의원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문 대통령이 말한 ‘뭘 어떻게 도왔는지 알 수 없는 분’이었을까. ‘대선 기여’가 없었다면 김 의원이 드루킹의 주오사카 총영사 인사안을 청와대 인사수석실에 전달하진 않았을 것이다. 드루킹은 ‘뭘 어떻게 도왔는지 알 수 있는 분’이었다. 바로 그게 빚이 됐다.

갚지 않는 빚은 공짜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의 발목을 처음 붙잡은 것은 피감기관 돈으로 간 공짜 외유였다. 그가 국회의원 자격으로 받은 후원금을 자신이 소속된 연구단체에 ‘셀프 후원’한 것은 공짜 수입이었다. 불법이 된 공짜는 그를 사퇴로 내몰았다. 또 드루킹의 공짜 댓글 활동은 김 의원을 코너로 몰았다. 그 여파는 청와대를 흔들고 있다.

공짜보다 비싼 것은 없다. 그걸 너무 잘 아는 다른 드루킹들은 앞으로도 여권 핵심 인사들을 계속 압박할 것이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