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원스토어 eBook사업팀 매니저
요 며칠 점심을 먹고 카페로 들어가는 대신 캔커피를 사 들고 회사 앞 벚꽃 길을 걸었다. 곧 비 소식이 있다고 하니 그 전에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오늘도 연신 사진을 찍으며 ‘아 좋다’를 연발하고 있는데 저 멀리 교복을 입은 한 무리의 학생들이 다가왔다. 수업이 일찍 끝난 것인지 점심 탈출을 감행한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그들 역시 ‘아 좋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른 벚꽃이 이들에게는 행운이겠구나 싶었다.
학생 시절 때맞춰 피는 벚꽃은 늘 야속한 존재였다. 벚꽃이 피었다는 것은 중간고사가 다가온다는 징표였고, 채용 시즌이라는 엄포였다. 온전히 꽃구경만을 위해 시간과 마음을 할애하는 벚꽃 ‘놀이’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화려하게 핀 꽃을 즐기는 것이 내겐 허락되지 않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돌아보니 안쓰럽고, 할 수만 있다면 그때의 나에게 ‘괜찮아’ 말해주고 싶지만 그땐 그랬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는 계절의 황홀함을 즐기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관광객들의 상기된 표정이 다른 세상의 일 같고, 달뜬 꽃내음이 야속하게만 느껴지는 시기의 이들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게도 다시 그런 계절이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조악하지만 진심이 담긴 고3 때 쓴 시를 그들과, 훗날의 나와 함께 나누고 싶다.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밤 공기가 차다/길게 줄지어 늘어선 가로수들 사이로/갓 피어난 벚꽃들 하늘과 맞닿아 하얀 눈물로 엉기어 있다//…//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봄, 이 봄/고개를 들자 쥐똥나무야/벚꽃의 화려함에 기죽지 말자/잔인한 이 계절 한껏 앓고 나면/그 가을 앙상한 뼈만 남은 벚꽃나무 아래 너는/보석보다 찬란한 열매를 맺게 되리라//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봄/2007년 이 봄’ ―‘고 3, 그해 봄’
곧,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내년에도 어김없이 봄은 온다.
김지영 원스토어 eBook사업팀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