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현 사회부 기자
올 10월 평가부터는 달라지는 게 있다. 수·우·양으로만 공지되던 평가가 더 세분한 점수로 발표된다. 전체 석차를 공개하지는 않지만 같은 등급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누가 나보다 잘했는지, 못했는지 알음알음 알게 될 확률이 높다. 수·우·양으로 평정을 알려준 것도 불과 3, 4년 전 일이니 공직사회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바람’이 거센 셈이다.
평가철만 되면 6급 이하 직원과 이들을 평가하는 과장, 국장 간에 갈등도 생긴다. “정말 일을 못 해서 낮은 점수를 줬는데, 부하는 내가 자기를 이유 없이 미워한다고 소문을 내더라”라고 한탄하는 상사도 있다. 반면 “제일 민원 많고, 성과 나기 어려운 팀에 배치됐어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이런 팀에서는 근평을 잘 받을 수가 없다”며 억울해하는 직원도 있다.
상사들이 항상 갑(甲)인 것만은 아니다. 시는 지난해 말부터 부하가 상사에게 점수를 매기는 다면평가 결과를 승진에 적극 적용하고 있다. 다면평가 하위권인 상사는 승진 대상에서 아예 배제시킨다. 이달부터는 성과급 지급에도 연동했다. 일을 잘한다고 자신의 상사에게서 높은 등급을 받은 과장이라도 부하가 다면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주면 등급이 강등되고 받는 성과급도 깎인다. 후배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셈이다. 사석에서 만난 일부 상사는 “이렇게 인기투표 식으로 다면평가가 이뤄진다면 부하가 일을 못 해도 무서워서 혼도 내지 못한다”며 술잔을 들이켰다. 조직을 오히려 붕괴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부하나 상사나 평가제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느낌과 감, 윗사람의 기분에 따르지 않고 수치로 객관화된 자료에 따라 공정한 인사가 이뤄진다면 마음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원하는 바다.
그러나 상사와 부하가 서로에 대한 악감정만 쌓이게 하는 역기능이 순기능보다 두드러진다면 평가방식을 좀 더 세밀하게 조정,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과거 근평 하위 3% 공무원들에게 한강에서 풀 뽑기를 시킨 적이 있다. 능력도, 목표도, 공복이라는 마음가짐도 부족하면서 ‘꼰대’같이만 굴던 선배들이 사라지자 내심 기뻐한 후배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풀 뽑기는 언론에 보여주기 식으로만 끝났다. 이들 꼰대를 좀 더 나은 공무원으로 재배치하는 재교육 등은 없었다. 모멸감을 주는 방식이 부각되는 순간 평가제도의 목적은 사라진다. 시장이 잘 헤아렸으면 좋겠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