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1910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글씨의 가치를 잘 알아주지 않는 우리 사회에도 1점에 5억 원이 넘는 글씨가 있다. 안중근의 행서 족자 ‘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황금 백만 냥도 자식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는 2016년 9월 경매에서 7억3000만 원에 팔렸다. ‘인무원려 필유근우(人無遠慮 必有近憂·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필히 가까운 근심이 있게 된다)’는 2008년 5억5000만 원에,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요, 성패는 하늘의 뜻에 달렸다)’은 2006년 4억6000만 원에 낙찰됐다.
안중근의 글씨는 왜 이렇게 비쌀까? 글씨가 좋아서 일까, 아니면 인품 때문일까? 일반적으로 글씨 자체는 대단치 않지만 인품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글씨 하나만 보더라도 매우 높은 경지에 이르렀고 확실한 차별성이 있다. 트레이드마크인 단지된 손도장이 압권이다. 사형 집행을 눈앞에 두고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이라고 썼으니 그 감동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시장의 평가는 전문가보다 오히려 더 정확하고 냉정하다.
글씨에서 송곳 같은 예리함, 강한 기세, 서릿발 같은 기상,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가 느껴진다. 필획이 두텁고 법도가 엄정하며 단아하고 침착하며 강인하고 용기백배하다. 글씨가 내뿜는 강인한 힘과 무게, 기품에 눌려 글씨 앞에 서있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