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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 아래서]〈1〉‘코레’ 농부가 된 프랑스 남편

입력 | 2018-04-20 03:00:00



신이현 작가

“이렇게 더 이상 계속할 수는 없어. 죽을 것 같아.”

2015년 어느 날 새벽 2시,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 레돔(애칭)이 말했다. 이 한마디가 우리 가족의 인생 항로를 바꿔놓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2003년 프랑스에서 만나 결혼해 현지에서 살았던 나와 남편이 남편의 직장을 따라 서울에 정착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발령받은 첫날부터 회사 일이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다. ‘한 달 뒤면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그러나 1년이 지나도 이런 상황은 계속됐다. 결국 우리는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이 쓰라린 경험은 레돔이 자기 인생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오랫동안 원했던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게 뭐냐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농부가 되고 싶어.”

농부라니, 그건 나중에 은퇴하고 취미로 하면 되지 않는가? 레돔은 제대로 된 농부가 되려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시작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나이 마흔에 농업학교에 입학해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공부를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포도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농업대 전공 졸업이 의무사항이다.

어제까지 넥타이 매고 노트북 가방 들고 회사에 가던 남자가 청바지에 셔츠 입고 포도밭으로 갔다. 곱슬머리는 어찌나 길고 수북한지 시아버지는 아들을 볼 때마다 머리 좀 깎으라고 사정한다.

한 집안의 가장이 직장을 버리고 포도밭에서 가지치기를 하니 나는 걱정이 됐다. ‘저 일 해서 아들 뒷바라지는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이 나이에 무슨 풍랑인지 모르겠네.’ 나는 공부하는 그의 등 뒤에서 투덜거리고 짜증을 냈다. 내심 졸업시험에 실패하기를 바랐지만 통과하고 말았다.

이제 어디에 가서 와인을 만들지? 그는 프랑스 남쪽을 돌아다녔다. 우리 이곳에서 한번 살아볼까? 그러나 내게는 너무 낯설었다. 더 이상 외국에 살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낯선 시골에서 조그마한 동양 여자로 늙어갈 게 슬프게 느껴졌다.

“그럼 한국은 어때? 포도 와인은 많지만 사과로 만든 시드르(사과 스파클링 와인)는 없잖아. 우리가 처음 만들어보자.”

이렇게 해서 또다시 한국으로 오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이 걱정했다. 어른들이야 자기 하고 싶은 걸 한다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는 아들은 어쩔 거냐는 것이었다. 아이는 비명을 질렀다. 한국 학교 싫어!

“아들 고교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면 6년인데 그럼 내 나이가 몇이지? 안 돼. 얜 아직 어려. 부모와 함께라면 아이는 어디를 가든 상관없어. 괜찮아.”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늙어가는 아비의 꿈이 더 중요하다고 결정을 내렸다. 농부가 되기에 가장 적절한 때를 놓치면 농사를 망친다. 이렇게 해서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안녕, 프랑스. 당분간은 안 그리울 거야.
 
신이현 작가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 씨와 충북 충주에서 포도와 사과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드는 작가 신이현 씨가 부부의 알콩달콩 이야기를 담은 칼럼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