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형권 국제부장
2월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남(訪南)했을 때부터 기분이 나빴다. 겨울축제를 순식간에 남남(南南)갈등의 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폐회식 내내 김영철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올림픽 친선을 도모하는 일과 많은 사람을 죽인 남자 바로 옆에 앉아 있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았다.”
이달 2일 우리 예술단의 평양 공연 때 한국 기자들에게 “남한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입니다”라고 말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땐 내 귀를 의심했다. 46명의 숭고한 목숨에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나.
한반도의 올봄은 북한 비핵화를 향한 ‘정상회담 월드컵’ 기간이다. 남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정상이 직접 뛰는 A매치(국가대표 경기)의 연속이다. 한국엔 만만한 상대가 하나도 없다. ‘국익 극대화’라는 최고 성적을 얻으려는 각국의 전략전술은 눈부실 지경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소 닭 보듯 하던 북한 김정은을 전격적으로 끌어안으며 첫 정상회담 파트너가 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 패싱’을 방지하려고 언제나처럼 태평양 너머 미국으로 날아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후보자를 극비 방북시켜 북-미 회담 돌다리를 하나하나 두들기며 점검하는 치밀함을 선보였다.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에 대한 ‘트위터 경질’을 비난했던 외신들도 폼페이오의 전격 기용을 ‘비핵화 담판을 위한 맞춤형 선수 교체’로 달리 보기 시작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스럽게’ 한반도 판세에 끼어들 타이밍을 조용히 노린다. 남북미 대화의 중재자를 자처한 한국은 선수로도 뛰면서, 대회 전반의 운영도 신경 써야 하는 복잡·미묘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축구 월드컵에선 반드시 꺾어 ‘승점 3점’을 챙길 약체 팀을 점찍어 놓는다. 북핵 월드컵에서도 그럴 수 있다. 그래야 강팀(강대국)과의 경기(정상회담)에서 더 다양한 옵션과 ‘경우의 수’를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가 보여줬듯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실제 성적과 꼭 비례하진 않는다. 북핵 월드컵에서도 국력 순위를 뛰어넘는 성과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러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언론사 사장단 간담회 때 말한 것처럼 어떤 ‘디테일의 악마’에도 촘촘하고 완벽한 대응방안을 짜놓아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구나’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
부형권 국제부장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