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 4월 18일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반도 안보 상황을 좀 더 궁극적인 평화체제로 발전시켜나가고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상징적 차원에서라도 ‘종전선언이 필요하다’ ‘비무장지대 내 남북한 GP(감시초소)를 철거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을 거쳐 남북미 정상회담을 열어 3국이 종전선언을 한 뒤 평화협정을 논의한다는 내용을 두고 청와대가 미국 트럼프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들은 미국과 종전선언을 논의할 수 있는 이유로 4월 1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들(남북한)은 확실히 내 축복을 받고 있다”며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5곳을 검토 중”이라고 말한 것을 꼽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말을 한 것은 3월 31일 중앙정보국(CIA) 국장 출신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내정자를 비밀리에 북한으로 보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만나고 오게 한 것과 관련 있다. 폼페이오 내정자는 4월 13일 미 의회 인준 청문회에 출석해 “나는 (북한의) 정권교체를 지지한 적이 없으며 지금도 지지하지 않는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포괄적으로 비핵화에 합의한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 정권 붕괴를 거론하던 폼페이오 내정자가 “북한 정권교체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백악관은 속도 조절 중폼페이오 내정자의 방북 직후 있었던 것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방미다. 정 실장은 4월 12일 폼페이오 내정자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났다. 정 실장은 “한반도의 적대행위 금지와 이를 통한 궁극적 평화체제 구축은 물론, 북한이 가진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북이 올바른 선택을 할 경우 밝은 미래를 어떻게 보장할지 등 여러 가지 보장 방안을 놓고 심도 있게 논의했다”며 “볼턴 보좌관은 자신이 늘 강조해온 것처럼, 정직한 중재자로서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정책 의지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고자 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한미가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 포진한 자주파가 만들어낸 결과다. 자주파의 대표 격인 임종석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대통령비서실장)은 4월 17일 브리핑을 자청해 “남북대화를 하는 데 1의 공을 들였다면 한미(대화)에는 3 이상의 공을 들였다”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평양을 고집하는 것 외에는 북·미 대화 준비도 순조롭게 되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남북정상회담이 미국의 적극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면, 이번 회담은 미국과 충분히 소통하며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기대와 다른 행동도 나타나고 있다. 정의용-존 볼턴의 회담 바로 다음 날인 4월 13일 미국이 영국, 프랑스와 함께 시리아를 공습한 것이 바로 그 예다. 이 공격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ABC(핵·생물·화학무기) 개발 및 사용 절대 금지, 화학무기를 쓰고 있는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는 러시아를 향한 경고, 러시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약점을 쥐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을 일축하려는 백악관의 의지,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시리아를 방치할 경우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공격해 중동 정세가 더 복잡해질 것이라는 우려, 미국까지 도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만들고 있는 북한과 그런 북한을 제어하지 않는 중국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많다.
시리아는 알아사드 부자(父子)가 40여 년째 세습해온 대표적인 독재 국가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는 김일성과 돈독했기에, 북한은 시리아와 미사일 거래를 해왔다. 시리아가 운용하는 화학무기 시설에는 북한 기술자들이 파견돼 있으며,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는 김일성 공원도 조성돼 있다. 따라서 시리아는 북한산 핵무기를 수입하는 첫 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시리아를 공습했으니 북한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이용해 영원한 비핵화를 선언하지 않고 시간 끌기를 한다면 미국은 북한도 공습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너무 과속하지 마라”이 의견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4월 17일 미 상원 인준 청문회에 출석한 필 데이비슨 미국 태평양사령관 지명자가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할 경우 어떤 대책이 있느냐는 질문에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과 나의 임무는 대북 압박을 계속하기 위해 가용한 범위에서 군사옵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대답한 사실을 꼽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회담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이 잘 안 풀려 만나지 못하면(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되면)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매우 강경한 길로 계속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이는 청와대 자주파는 남북대화에 다걸기를 하고 있지만, 트럼프 정부는 화전(和戰) 양면전술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의미다. 한 소식통은 “볼턴 보좌관은 정 실장을 만났을 때 ‘남북정상회담에서 한국은 너무 나가지 말라’는 경고를 여러 번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증거로 정 의장의 방미가 있기 전 볼턴 보좌관과 매우 가까운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당)이 ‘폭스뉴스’에 출연해 4월 7일 시리아 정부가 반군이 있는 두마지역을 화학무기로 공격한 것을 비난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알아사드를 어떻게 처리할지 이란과 러시아, 북한이 지켜보고 있다며 시리아 공격을 주장한 것을 꼽는다.
그레이엄 의원의 방송 출연이 있은 후 진짜로 미국은 시리아를 공습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여전히 대북 강경책을 쓸 것을 주문하고 있다. 따라서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정부가 미국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너무 나간 합의를 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카드를 버리고 무역과 압력으로 한국, 중국을 억누르면서 북한을 공습할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한 소식통은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북한으로부터 비핵화 방안만 받아오고 나머지는 건들지 말라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 같다. 그러나 그 수준을 뛰어넘고자 하는 것이 자주파인데, 자주파와 트럼프 대통령의 2인3각 달리기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