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 꿈꾸는 혁신성장]<11> 현대차 사내 스타트업 3팀
현대·기아자동차 안에서는 자동차를 넘어서는 다양한 분야의 사내 창업이 이뤄지고 있다. 10일 경기 의왕시 현대·기아차 의왕연구소에서 만난 스타트업팀 튠잇, 마이셀, 키즈올의 팀원들은 “우리의 작은 아이디어가 10년, 20년 뒤에는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각각 개발한 스마트폰 앱 화면, 버섯 가죽과 복합재, 카시트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의왕=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정보기술(IT)에 관심이 많던 송영욱 현대자동차 책임연구원은 2013년 말 이런 고민에 빠졌다. 사용자는 스마트폰에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깔고 데이터를 입력하고 운영체제를 업그레이드해서 쓸 수 있다. ‘나만의 폰’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동차는 그게 안 된다. 소비자가 차의 기능을 바꾸거나 변화를 줄 수 없다. 이것이 송 씨의 고민이었다.
10일 경기 의왕시 현대·기아차 의왕연구소에서 만난 이기창, 신형 연구원도 “송 씨의 문제의식에 공감해 ‘함께 창업하자’며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창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밖으로 나간 것은 아니다. 사내벤처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현대차의 H스타트업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2014년 5월 사내 스타트업 ‘튠잇(Tune iT)’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들은 앱으로 차량을 제어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송 씨는 “누구나 내 차를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튠잇은 앱을 업그레이드하면 차의 기능도 더 다양하게 쓸 수 있는 단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나아가 앱 이용자들이 경험과 아이디어를 나누고 새 기능을 만들어내는 ‘커뮤니티’도 꿈꾸고 있다. 세 사람은 내년 상반기(1∼6월)에 현대차에서 독립해 창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다른 현대차 사내 스타트업 마이셀(Mycel)은 버섯과 씨름 중이다. 자동차회사에서 왜 버섯일까. 2010년경 사성진 책임연구원은 우연히 프랑스에서 버섯을 소재로 포장재를 만들었다는 내용의 테드(TED) 강연을 봤다. 버섯이 산업에도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에 영감을 얻어 H프로그램을 통해 팀을 꾸렸다. 여기에 민정상 연구원(가죽화 및 기획 담당), 이준호 연구원(복합재 담당), 김성원 연구원(기술 담당)이 합세했다. 팀명 마이셀은 버섯의 균사체를 의미하는 마이셀리움(Mycelium)에서 따왔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팀원은 기계공학이나 전기 분야 전공자들이었다. 버섯을 다룰 생명공학이나 농업에는 문외한이었다. 사 씨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전공책을 사서 하나 하나 처음부터 공부했다”고 말했다.
밤샘 공부와 연구의 결과 이들은 버섯을 재배할 때 쓰고 버리는 ‘배지’로 건축용 단열복합재를 만들어냈다. 기존 유사 복합재는 몸에 해로운 포름알데히드 등의 물질이 들어가는 데 반해 이들이 만든 복합재는 폐배지를 압축, 가공해 만든 것이라 100% 친환경 소재다. ‘버섯 가죽’도 만들었다. 실제 만져본 버섯 가죽은 양가죽과 촉감이 흡사했다. 현재 자동차의 내장재로 가죽이 많이 쓰이는데 이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 벤틀리 등 해외 유명 브랜드도 친환경 바람을 타고 유사한 시도를 하고 있다.
키즈올이 꿈꾸는 궁극의 카시트는 차와 ‘한 몸’이 된 유아보호 시스템이다. 이형무 연구원은 “2025년경에는 카시트 없이도 아예 차의 뒷좌석이 아이를 보호하는 자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튠잇, 마이셀, 키즈올 같은 사내벤처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H스타트업 프로그램을 2000년부터 진행해 왔다. 올해도 9개 팀이 새로 선발됐다. 노현석 H스타트업 팀장은 “선발된 인재들이 본업에서 일정 기간 떠나 창업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독립을 한 뒤에도 현대차가 이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회사를 키워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의왕=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