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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이 한줄]‘인화경영’ 창업주 유지 거스른 ‘대한항공 3세’들

입력 | 2018-04-24 03:00:00


《기업은 인간이 만들고 그 사람들로 구성되는 조직의 힘에 의해 육성, 발전되는 것이라는 내 나름의 체험과 소신을 갖고 있었다. 기업은 곧 인간이며 인화(人和)가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내가 걸어온 길(조중훈·1996년)》



그가 25세가 되던 해인 1945년 11월 1일, 그는 트럭 한 대를 장만해 인천시에 자그마한 종합상사를 만들었다. 나라의 진보를 위한다는 뜻에서 ‘한(韓)민족의 전진(進)’이라는 의미를 담아 상호를 ‘한진(韓進)’으로 지었다.

그는 교통과 수송 사업이야말로 나라의 중추 산업이 될 것이라 믿었다. 모두가 꺼렸고 심지어 정부도 포기하려던 항공산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한진상사가 창립된 지 정확히 23주년이 되던 1968년 11월 1일, 정부가 운영하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했다. 그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민항 항공사가 출범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항공’의 첫 시작이다. 그는 항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항공기가 아니라 종업원들이라고 믿었다.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할 때 직원들 사이에선 인력 감원설이 흘러나왔다. 그는 사람을 소중히 했다. 그가 공식석상에서 “감원은 없다”고 3번이나 말하며 직원들을 감동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기업은 곧 인간이며 인화(人和)가 중요하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그는 “최고경영자라고 해서 너무 강철처럼 딱딱하고 고압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을 대할 때 농담도 필요하다고 했다. 서민적인 자세로 직원들과 말을 섞으면서 고충을 들었다고 했다. 직원의 얼굴도 기억하고 부드러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이런 성격을 염려해 ‘동(動)’과 ‘정(靜)’이 조화를 이루라는 뜻에서 ‘정석(靜石)’이라는 호(號)를 지어주었다. 대한항공의 창업주이자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아버지,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할아버지 ‘정석 조중훈’ 선생은 그런 사람이었다.

조 회장이 76세가 되던 1996년에 쓴 회고록 ‘내가 걸어온 길’은 대한항공 직원이 아닌 필자가 봐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부분이 많다. 대한항공은 이 회고록을 신입사원들에게 반드시 읽게 한다. 최근 조 창업주의 손주들 때문에 대한항공이 무척 시끄럽다. 막상 정석 조중훈 선생의 손주들은 회고록을 읽지 않은 것만 같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