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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막으려다 질식할라… ‘KF94 마스크’ 영유아엔 위험

입력 | 2018-04-24 03:00:00

국내 ‘어린이용’ 미세먼지 마스크, 선진국선 아이들에 금지




김모 씨(36·여)는 미세먼지 마스크를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고민에 빠졌다. 올해 초까지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인 날엔 네 살배기 아이에게 입자 차단 성능이 두 번째로 높은 ‘KF94’ 마스크를 꼭 씌웠다. 하지만 최근 김 씨는 KF94 마스크를 낀 채 달리다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머리가 핑 도는 경험을 한 뒤 생각이 바뀌었다. ‘폐활량이 성인보다 적은 아이들이 마스크로 호흡 곤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다.

실제 미세먼지 마스크를 썼을 때 생기는 호흡 곤란 증상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싱가포르국립대병원이 2015년 임신 27∼32주인 임신부 20명(21∼40세)을 상대로 실험해보니 한국의 KF94 등급에 해당하는 N95(미국 기준) 마스크를 쓴 경우 평소보다 호흡량이 23%나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세먼지 차단율이 높을수록 마스크의 필터 조직이 먼지를 걸러내기 위해 촘촘히 짜여있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착용하면 산소 소모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각각 13.8%, 17.7% 감소했다. 폐활량이 성인보다 적은 아이들에겐 마스크 필터 안쪽이 산소가 부족하고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환경이라 밀폐된 좁은 공간과 비슷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선진국은 미세먼지 마스크를 아예 산업안전용으로 분류하고 영유아가 착용하지 않도록 당부하고 있다. 미국 흉부학회는 “아동들에게 마스크가 호흡을 어렵게 해 육체적 부담을 주며, 호흡량을 감소시켜 폐와 심장 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마스크 제조업체인 3M은 자사 영문 홈페이지에 “3세 미만 아동은 질식 위험이 있으니 마스크를 착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문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 현행 마스크 허가기준엔 숨을 들이마실 때 생기는 ‘흡기저항’의 수준이 포함돼있지만 연령별 폐활량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영유아가 견딜 수 있는 흡기저항이 어느 정도인지 마스크 기준을 만든 식품의약품안전처도 모른다.

이 때문에 한국에선 마스크 제조·판매 업체가 성인도 숨쉬기 쉽지 않은 KF94, KF99 등 마스크에 ‘우리아이 마스크’나 ‘아이가 편한 마스크’ 등 영유아용임을 암시하는 광고를 하고 있다. 이렇게 해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최근 육아 커뮤니티엔 숨을 내쉴 때만 실리콘 밸브가 열리는 ‘밸브형 마스크’를 착용하면 아이가 숨쉬기 좋다는 내용이 올라오지만 아직까지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①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엔 가급적 아이 외출을 삼가고 ②불가피하다면 흡기저항이 상대적으로 약한 KF80 마스크가 그나마 질식 위험이 적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불안을 해소하려면 시판 중인 미세먼지 마스크를 정부가 검증하고 필요한 경우 주의문구 표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재연 아주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미세먼지 농도가 ‘보통’인 날엔 영유아에게 마스크를 씌우는 게 오히려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