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그리고 얼마 전에는 마지막 강의를 하는 장길도 교수의 강의실에 갔다. 장길도는 이 대학의 한국학과 교수인 장클로드 드크레센조의 한국 이름이다. 그는 붓글씨를 쓰고 수지침을 놓고 한국 가수의 노래를 부르고 한국 음식과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프랑스 사람이다. 10년 전부터 프랑스에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웹진 ‘글마당’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고, 자기 이름을 딴 드크레센조 출판사를 통해 한국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일도 하고 있다. 많은 한국 작가의 소설들이 이 출판사를 통해 프랑스에 소개됐다. 이 대학에 한국학과를 만든 것도 그이다. 처음엔 몇 명에 지나지 않았던 한국어 전공자가 현재 부전공자까지 합하면 5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케이팝을 비롯한 한류의 영향이 컸겠으나 꼭 그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서프라이즈 퇴임 행사처럼 치러진 마지막 강의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수강하지 않은 학생들까지 몰려들어 강의실은 가득 찼고, 작은 선물과 편지들, 진심 어린 감사의 말들이 오고갔다.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편지를 써서 만든 한 권의 노트를 퇴임을 앞둔 스승에게 증정하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선생과 학생들 간의 관계가 스스럼없고 구겨져 보이지 않았다. 선생은 권위적이지 않았고, 학생들은 선생을 어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선생은 아버지 같았고(실제로 학생들 중에는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었다), 학생들은 아들딸처럼 친근하게, 그러면서도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나는 배꼽에 손을 얹고 공손히 인사하는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반가우면서도 신기했다. 당연해 보여야 하는 그런 모습이 내 눈에는 왜 낯설었을까. 전에는 흔하고 익숙했지만,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풍경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대학생들보다 한국을 배우는 외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적인 정서를, 적어도 표면적인 인상으로는, 더 잘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에 고국을 떠난 이들로 이루어진 이민사회가 오히려 전통적인 것을 잘 보존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습득하는 외국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우리 것이 지켜지고 있는 현장을 보기 위해 이제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일까?
한국 사회가 몸을 싣고 내달려온 놀라운 변화의 속도에 대해 생각한다. 변화의 물살에 휩쓸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라는 생각. 뒤돌아보면 뒤돌아보는 시간만큼 속도가 줄기 때문에, 그러면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뒤돌아보지 말라는 처세술을 교훈으로 포장해서 주입하고 주입받는 사회라는 생각.
물론 물려받은 것, 전통적인 것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것 가운데 버려야 할 것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무조건 내달리는 속도의 관성에 따라 버리지 말았어야 할 것까지 내버린 것 또한 사실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라는 말은 가죽부대(형식)와 포도주(내용)가 서로 어울려야 한다는 뜻이지, 새것이 오래된 것보다 좋다는 뜻으로 써먹을 말은 아니다. 오래된 좋은 것이 있고 오래된 나쁜 것이 있는 것처럼, 좋은 새것이 있고 나쁜 새것도 있는 법이다. 필요하고 중요한 일을 해야 하지만, 그것이 마찬가지로 필요하거나 마찬가지로 중요한 다른 일을 하지 않을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끝>
이승우 소설가·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