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의 일본 5대 개혁 중 하나 민주화와 지방분권 위해 경찰에 독자적 수사권 준 것 제왕적 대통령제 넘어서려면… 대륙법계 국가에도 유례가 없는 한국 검찰의 무소불위 권한 깨야
송평인 논설위원
미국 경찰은 수사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진다. 경찰관은 피의자를 기소하면 유죄를 받을 수 있을지 보장을 얻기 위해 검사라는 국가 변호인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마치 의뢰인이 변호사를 찾아가는 것과 같다. 법률 지식 자체가 혐의를 결정하는 복잡한 사건에는 검사가 수사권을 갖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수사는 경찰의 몫이고 검찰은 예외적으로 수사할 뿐이다.
검사는 경찰관이 들고 온 사건을 검토해 기소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면 컴플레인트(Complaint)라는 문서를 작성한다. 중요한 점은 이 문서의 작성명의인이 검사가 아니라 경찰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검사는 기소를 결정하지도 않는다. 기소는 시민들로 구성된 대배심이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검사는 대배심에 컴플레인트를 제시할 뿐이다. 다만 혐의자가 대배심에 의한 기소를 원하지 않을 때 보충적으로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일본 경찰은 검찰을 거치지 않고 체포영장을 독자적으로 청구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구속에 해당하는 구류는 일본에서도 검찰만이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피의자를 체포하지 않으면 구류영장을 청구하지 못하는 체포전치(前置)주의를 택하고 있는데 경찰이 피의자를 체포한 후 구류영장을 신청해 기각되는 사례가 없다. 검찰이 기각할 수 없지 않은데도 기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동등한 영장청구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권력구조를 제왕적 대통령제로 만드는 단 하나의 요인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수사지휘권은 물론이고 직접수사권에 영장청구권 수사종결권까지 갖고 기소권까지 독점하는 검찰을 들겠다. 같은 대륙법계 국가인 독일만 해도 연방검찰과 주검찰이 나뉘어 있으나 우리나라 검찰은 전국을 통할하기까지 한다. 이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가진 검찰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그런 권한을 휘두르며 산 권력에는 한없이 자비롭고 죽은 권력에는 한없이 잔인한 검찰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지 않는 한 제왕적 대통령제는 무너지지 않는다.
일본과 한국 신문을 펼쳐보면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일본 신문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 수사는 대부분 경시청이 주어로 돼 있고 한국 신문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 수사는 대부분 검찰이 주어로 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드루킹 사건’으로 경찰이 모처럼 주요 사건 수사를 맡았으나 역시 권력의 눈치를 보는 수사로 비판받고 있다. 실은 오만 가지 수사에 개입하던 검찰이 여기서만 유독 뒷짐을 지고 있는 것 자체가 꿍꿍이가 없지 않아 보인다.
걱정되는 것은 검찰이나 경찰이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시각이 확산돼 검경수사권 조정이 흐지부지될까 하는 것이다. 검경수사권 조정은 검찰이 못하니까 경찰에 권한을 줘보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외딴 갈라파고스섬에나 있을 법한 괴물 검찰의 권한 독점을 깨 검찰의 것은 검찰에, 경찰의 것은 경찰에 줘서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검경수사권 조정의 핵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