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로 평가받는 네덜란드 출신의 요한 크루이프(1947~2016)가 강조한 건 공간과 패스였다. 전원이 공격과 수비에 가담하면서 공간을 창출하고, 패스를 통해 경기를 지배해야하는 생각이었다. 그는 “경기장에 공은 단 하나 뿐”이라며 볼 점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확고한 신념은 FC바르셀로나(스페인)의 간결하면서도 창의적인 패스로 경기를 풀어가는 ‘티키타카’의 초석이 됐다.
점유율은 볼을 소유하는 시간적인 비율이고, 점유율이 높다는 건 경기를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유율을 두고 지난해 한국과 일본에서는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요한 크루이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국내에선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이 논란의 중심이었다. 그는 부임 초부터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박해야한다는 점을 선수들에게 강조했다.
축구인들은 대표팀의 경기력이 떨어진 이유가 점유율에 집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측면을 이용한 돌파와 빠른 크로스, 한방에 찔러주는 패스, 중거리 슛 등 상황에 맞는 강약 조절에 실패한 걸 안타까워했다.
일본에서는 정반대였다. 바히드 할릴호지치 대표팀 감독은 일본의 아기자기한 패스에 의한 점유율 축구를 멀리했다. 그는 직선적이었다. 강인한 체력과 몸싸움, 그리고 불굴의 정신력을 강조했다. 언론과의 논쟁도 잦았다. 그럴 때마다 할릴호지치는 “점유율이 높으면 이길 수 있다는 얘기는 잘못된 주장”이라고 맞받았다.
할릴호지치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일본 축구인들은 고개를 저었다. 오랜 시간 구축해온 자신들의 스타일을 감독이 한순간에 무너뜨렸다며 반감을 드러냈다. 또 일본 선수의 스타일에 맞는 전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 간극이 감독 경질의 한 요소가 됐다고도 볼 수 있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대표팀 감독이 바뀌었으면 어땠을까하는 농담 섞인 얘기도 많았는데, 공교롭게도 두 외국인 감독은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발간한 ‘2017 K리그 기술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정규리그 우승팀 전북은 전체 볼 점유율에서는 저조한 편이었다. 전북은 경기당 평균 26분13초로 12팀 중 7위다. 이 부문 1위는 29분91초의 FC서울이다.
전북이 강점을 보인 건 상대진영에서의 볼 점유시간이다. 전체 점유시간 중 상대 진영에서 17분63초(61%)를 기록했다. 이는 상대 진영에서 볼을 소유해 골 찬스를 많이 노렸다는 의미다. 골대 근접거리인 상대 진영 1/3지점에서의 점유시간도 리그 최고인 11분78초(39%)다. 이는 공격성향을 나타내는 지표인데, 공격 비중이 높은 전북의 플레이를 대변해준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최강희 감독은 “자기 진영에서 횡패스와 백패스를 하면 점유율은 높아진다. 골키퍼와 주고받는 점유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 팀은 수비진에서 볼을 오래 가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중앙 수비는 원터치로 볼을 사이드로 빼고, 빨리 전방으로 나가게 한다. 템포가 빨라야 경기가 박진감 넘친다”고 했다. K리그를 대표하는 브랜드인 닥공(닥치고 공격)은 이렇게 탄생했다.
다시 요한 크루이프로 돌아가 보자.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1985년부터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그는 1988년 여름 FC바르셀로나 감독에 올랐다. 창의적인 지도력으로 1991년부터 4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는데, 당시 제자 중 한명이 현재 맨체스터 시티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다. 과르디올라는 패스와 점유율을 중시한 크루이프의 축구철학을 계승한 지도자다. 올 시즌 맨시티는 높은 패스 정확도(88%)와 점유율(66%)을 앞세워 EPL 정상에 올랐다. 과르디올라는 EPL 무대 두 번째 시즌 만에 우승하며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체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