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오필리, No Woman No Cry, 1998년
그림 속 모델은 자메이카 출신의 영국인 도린 로런스. 1993년 4월 런던 남동부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다. 건축가를 꿈꾸던 18세 스티븐은 그날 밤 거리에서 낯선 무리들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검은색 피부를 가졌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사건 직후 백인 용의자 5명이 조사를 받았지만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경찰이 처음부터 불공정하게 수사한 결과였다. 엄마는 그때부터 투사가 됐다. 수년간 아들의 살인사건 재조사를 위한 캠페인을 이끌었고 여론의 지지와 관심 속에 1999년 비로소 재조사가 시작됐다. 2005년 ‘일사부재리 원칙’을 깨고 살인사건만큼은 재심이 가능하게 법이 바뀌었고, 마침내 2012년 가해자 중 두 명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 진실 규명을 위해 18년을 싸운 로런스는 차별과 불공정에 맞서 끝까지 항거한 강한 엄마의 표상이 됐다.
오필리는 로런스가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던 1998년에 이 그림을 그렸다. 자식 잃은 슬픔을 넘어선 어머니의 비장함에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또 인종차별 범죄의 희생양이 된 스티븐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특정 인물을 그린 것이지만 가족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진 모든 이들의 초상이기도 했다. 오필리 그림 속 엄마는 20년째 눈물을 흘리고 있다. 현실의 엄마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게다. 엄마의 눈물 속에서 지금도 여전히 18세 소년으로 살고 있을 스티븐은 어쩌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엄마, 이젠 울지 마세요.”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