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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사나이 박용택,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입력 | 2018-04-27 09:30:00

박용택은 트윈스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심장이고 현직 캡틴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LG의 33번은 영원히 박용택의 번호로 남을 것 같다. 스포츠동아DB


“우리 애들 확실히 다르지 않아요?”

시즌 초반 부진을 딛고 최근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LG의 중심은 ‘트윈스의 심장’ 박용택(39)이다. 최근 스포츠동아와 마주한 그는 후배들의 태도에서 강한 자신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류중일 감독 표’ 믿음의 야구에 선수들이 두려움을 잊었다는 확신에서다. 이는 곧 ‘일희일비’ 하지 않는 마음이다. 올해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지 17년째인 박용택 역시 조급함을 내려놓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 흐르듯 그저 성실히 야구에 임해왔을 뿐이다. 어느덧 2018시즌 박용택의 눈앞에는 그간의 노력을 증명하듯 ‘200홈런·300도루’와 KBO 통산 최다 안타(2318개) 경신 등 수많은 대기록들이 놓여있다. 다만 여기가 끝은 아니다. 그저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옛말이 무색하게도 박용택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한국나이 40대로서 첫 시즌, 여느 해와는 좀 다르게 느껴지나?

“전혀 모르겠다.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전혀 없다. 특별한 관리랄 것도 없다. 우선 머릿속에 ‘내가 40대’라는 생각을 전혀 안하고 있다. 나이 먹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쉬는 시간이 많아지긴 했다. 내 몸이 원하더라.”

-올 시즌 여러 대기록 달성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실감이 좀 되나?

“한국 야구 최다 안타와 같은 기록들은 정말 무한한 영광이다. 건강하게 매 시즌을 잘 치러온 덕분에 그간 쌓아온 것들이 기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단할 수 있지만, 정말 무던하게 ‘하다보니까 그렇게 됐어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17년 동안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라고 말할 수 있는 거다. 아마 그 순간에는 눈물이 나올 수도 있을 테고, 정말 감격스러울 거다. 그런데 그게 끝은 아니다. 그저 지나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박용택은 프로에서 열일곱 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다. 올해 우리나이로 마흔이다. 그러나 여전히 LG타선의 핵심 전력이다. 스포츠동아DB


-베테랑의 입장에서 그간의 세월을 되돌아보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지난해 (정)성훈(현 KIA)이랑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만약 우리가 다시 스물살로 돌아간다면 이렇게까지 못 온다’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앞날을 몰랐으니 지금까지 하고 있었던 거지 과정들이 결코 순탄하고 즐겁지만은 않았다.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한다. 베테랑들은 다들 그렇게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에 내가 어떤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아마추어 때까지는 불안했다. 입단 전에는 최고의 슈퍼스타가 되고 싶었고, ‘20(홈런)-20(도루)’이나 ’30-30‘ 등 정말 모든 걸 다 잘하는 타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입단해서 프로 무대에 직접 부딪쳐보니 ‘야구가 쉬운 게 아니구나’ 싶더라. 항상 앞날이 불안한 상태에서 야구를 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절반, ‘나 잘 할 수 있어!’ 절반. 물론 지금도 그렇다.”

-베테랑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

“결국 야구라는 것이 시즌을 치르면 기록은 실력대로 나오게 되어있다. 한 시즌 130~140경기 500타석 정도에 나가면 결국 기록은 다 평균에 수렴한다. 연차가 쌓이면서 일희일비 하지 않게 됐다. 덕분에 조급함도 많이 내려놓았다. 나 역시 그런 마음가짐을 갖게 된 것이 불과 3~4년 밖에 안됐다.”

-나만의 타격 철학이 있나?

“내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 비법 중 하나라면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됐다. 내가 지금 어떻게 치고 있는지, 내가 왜 안 맞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스스로 빨리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야구가 참 어렵다. 어디가 아픈지 알면 그에 맞는 처방약이 딱 나와야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휴대폰 메모장에 나만의 해결책들을 정말 많이 적어 뒀지만, 이후 같은 상황에서 같은 방법을 써도 통하지 않는다. 어제, 오늘, 내일의 나는 또 달라서다. 기분, 체력, 컨디션 등 여러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작년에 잘 친 자세로 똑같이 한다고 해서 잘 맞는 것도 아니다. 변수가 너무 많다. 아마 은퇴할 때까지도 답이 없을 거다. 그나마 비슷한 답을 많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게 경험인거다.”

2011 시즌 당시 이병규-박용택(오른쪽). 사진제공|LG 트윈스


-이병규 코치도 타격에 대한 조언을 해주나?

“그냥 말동무를 잘해준다(웃음).”

-선수 생활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나?

“느낌은 뭐 60세 까지도 할 수 있지. 개인적으로는 안타를 3000개 정도 친 뒤에는 ‘아, 이정도면…’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종종 선배들에게서 ‘야구에도 권태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최근 몇 년 전부터 가끔씩 느끼곤 한다. 뭔가 다 이룬 거 같고, 나이도 많고, 지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똑같은 생활을 20년 가까이 하다보니 그렇다. 선배들은 그런 마음이 정말 위험하니 조심하라고들 하셨다. 그런 권태감을 극복하려면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어야 하더라.”

-그래서 어떤 목표를 세웠나?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항상 시즌 들어갈 때 세세하게 1년의 목표를 잡는다. 이를테면 나와 약속을 하는 셈이다. 몇 타석 몇 타수 몇 안타 등등. ‘올 시즌 내가 이정도 하면 성공이다’ 싶은 모든 것들을 적어둔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에 비교해본다. 목표치보다 넘어온 것도 있고, 부족한 부분들도 있다. 어릴 때는 정말 안 이뤄지더라. 그래도 최근 몇 년은 대개 비슷하게 충족해 왔다. 내가 조금씩 나태해질 때마다 정신을 바로잡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효과를 보는 것 같다.”

LG 박용택. 스포츠동아DB


-최선참으로서 올 시즌 다시 주장을 맡았다. 이전과 다른 것이 있나?

“처음 주장을 맡았을 때는 엔트리에 10명 이상이 선배였다. 나는 나이가 중간이었다. 사실상 총대만 메고 주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도 하는 건 없다(웃음). 고참이자 맏형으로서 하는 역할들이 주장의 그것과 비슷하다. 그냥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애가 있으면 ‘무슨 일 있니. 왜 그러니’하면서 말을 걸어주는 것뿐이다.”

-우승을 목표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외의 개인적 소망이 있나?

“아프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나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아프지 않고 1년을 잘 치르고 싶다. (부상의) 절반은 내가 예방할 수 있고, 절반은 하늘에 맡겨야 한다. 예전에는 방망이가 좀 안 맞으면 무조건 연습을 했는데, 요즘은 ‘아 내가 지쳤구나. 쉬어’하면서 무조건 쉰다.”

-그런 점에선 그간 운이 아주 좋았던 것 같다.

“우선 건강하게 낳아 건강하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다. 또 곁에 아내가 있고, 하늘에서도 나를 도와주는 걸 보면 내가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살았나보다. 하하”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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