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남북정상회담]핵심의제 비핵화 합의 어디까지
27일 판문점에서 처음으로 마주 앉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담판지어야 하는 의제는 사실상 단 하나다. 올해 형성된 한반도 대화 기류를 이어갈 수 있을지를 가늠할 핵심 의제, 바로 비핵화다.
두 정상의 비핵화 논의 결과에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이어지는 북-미 정상회담의 성패가 달려 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26일 정상회담 세부 일정을 공개하면서도 두 정상의 합의문 발표 형식, 장소 등을 모두 미정으로 남겨둔 것도 비핵화 문제가 어떻게 결론이 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완전한 비핵화’ 南 vs ‘경제 지원’ 北
북한은 20일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 중심으로의 궤도 수정을 선언하면서도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비핵화를 대가로 최대한의 경제적 지원을 국제사회로부터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의 인식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비핵화에 합의해도 구체적인 후속 조치에는 여러 난관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이 최근 연이어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고 말한 이유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핵 폐기의 검증 방법 및 시한, 보유한 핵 기술의 폐기 여부 등의 세부 조치가 핵심”이라며 “선언적 의미의 비핵화에만 합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발효 뒤 남북 사이에 도출한 비핵화 합의가 없었다는 점도 관건이다. 비핵화 합의는 6자회담 등 미국 중국이 참여한 다자(多者) 협의에서 이뤄졌다. 임 실장이 이날 “비핵화 의지를 두 정상이 어느 수준에서 합의할 수 있을지, 어떤 표현으로 명문화할 수 있을지가 어려운 대목이다”고 한 것도 이런 기류를 담고 있다.
다만 청와대는 1992년의 공동선언을 기본 토대로 비핵화 관련 합의문 마련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남북 총리가 서명한 이 선언에는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보유·저장·사용 금지, 핵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시설 보유 금지, 비핵화 검증을 위한 사찰 등 비핵화와 관련한 세부 조치를 담고 있다. 청와대는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합의문에 담지 않더라도 “1992년 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한다”는 식의 담판을 시도할 것으로 보이지만 김정은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관건이다.
○ 과거 비핵화 논의와 차원이 다른 회담
임 실장은 또 “북한의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고도로 발전한 이 시점에 비핵화 합의를 한다는 것은 1990년대 초, 2000년대 초에 이뤄진 비핵화 합의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이 점이 이번 회담을 어렵게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임 실장이 언급한 두 번의 합의는 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6자회담 결과물인 9·19 공동성명이다.
모두 파국으로 끝난 두 합의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던 시점에 이뤄졌다. 하지만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이번 회담은 핵을 원점으로 돌리기까지 밟아야 할 절차가 더 많고 복잡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핵뿐만 아니라 그 운반체인 ICBM까지 더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핵뿐만 아니라 미 본토를 사정거리에 둔 ICBM 폐기까지 요구하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회담에 대해 “핵과 ICBM 문제에서 어떤 합의가 나올지 여부가 2000년, 2007년 정상회담과 비교하면 가장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그 대신 청와대는 “경제 논의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라며 여지를 두고 있다. 북한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는 동안 구체적이고 빠른 비핵화 조치를 약속한다면 국제사회의 경제 지원을 청와대가 이끌어낼 수 있다는 신호다.
한편 이번 회담에서는 비핵화 외에도 군사적 긴장 완화, 판문점 회담 정례화 등이 대화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또 평창 겨울올림픽 때 국가체육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한국을 찾은 최휘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수행단에 포함되면서 문화·체육 교류 논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