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4·27 판문점 선언]첫발 뗀 한반도 평화체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번갈아 서명한 ‘판문점 선언문’을 교환하고 있다. 판문점=한국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뒤이어 연단에 나선 김 위원장의 발표는 조금 달랐다. 그는 “무엇보다 온 겨레가 전쟁 없는 평화로운 땅에서 번영과 행복 누리는 새 시대를 열어갈 확고한 의지를 같이하고 실천적 대책에 합의했다”고 강조하면서도 평화의 전제조건인 비핵화 얘기는 본인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문구가 선언문에 포함됐지만 그 실행 의지에는 차이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 ‘완전한 비핵화’에 서명해 놓고도 언급 안 한 김정은
남북 정상이 이날 서명한 ‘판문점 선언’에는 비핵화란 단어가 총 3번 등장한다. ‘비핵화’를 문구에 넣으려는 정부의 노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지만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하였다’는 것들은 원론적 언급이다. 반면 북한이 이행해야 할 향후 비핵화 조치에 대해서는 ‘자기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했다’는 두루뭉술한 입장에 우리가 동의한 셈이 됐다.
일각에서는 선언문에 ‘완전한 비핵화’란 문구가 삽입된 것에 적지 않은 의미를 둬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북한이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핵은 조미(북-미) 간에 해결할 문제’란 입장을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남북 정상 간 합의문에 비핵화 문구가 공식적으로 들어간 것 자체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 하반기까지 ‘남북 교류 로드맵’ 공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이행 조치는 물음표로 남겼지만 남북이 올해 말까지 촘촘한 교류 로드맵을 공개하며 대화 지속에 합의한 것은 의미가 있다. 북-미 간 비핵화 대화가 5월 혹은 6월 초중순 열릴 것으로 보이지만 추가적인 대화가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큰 만큼 남북 교류가 북-미 대화 지속을 유도하는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
남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 종전 선언을 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또 남북은 불가침을 재확인하고,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했다. 이에 5월 중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기로 했다.
하지만 북한은 앞선 2000년 6·15선언, 2007년 10·4선언에서 약속했던 남북 교류 확대나 상호 적대행위 금지와 같은 것들도 별로 이행하지 않았다. 특히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 있는 이행 조치가 북-미 정상회담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이번 선언문의 이행도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이번 판문점 선언에는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이 포함돼 있다. 앞서 우리가 북한에 약속했던 경제 지원이 이젠 뒤늦은 청구서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판문점이나 서울-평양이 아닌 개성에 설치하기로 한 것도 우려를 낳는다. 결국 북한이 개성공단 재개 등 대북 제재 약화를 노린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든다는 합의도 문제의 소지가 크다. 10·4선언 이후 논란이 컸던 북방한계선(NLL) 논란이 재개될 가능성이 있어 남남갈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