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성조림(速成造林)! 소나무 상수리 등 속성수 조림으로 단기간에 녹화운동의 성과를 거두겠다.” 1953년 4월 5일. 농림부는 식목일을 맞아 소나무를 비롯한 2500만 그루의 묘목을 전국에 심었다. 전방에선 포화가 이어졌지만 1948년부터 식목일이 공휴일로 지정된 터여서 공무원과 학생들이 모두 나섰다. 어제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식수한 ‘1953년생 평화의 소나무’도 65년 전 식목일에 심어졌을 것이다.
▷높이 2m 남짓의 그 반송(盤松)은 문재인 대통령과 동갑내기다. 소나무를 심고 한라산과 백두산 흙을 섞어 덮어준 김정은도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용희도 1953년생으로 알려진 데다 제주는 김정은의 외가가 있던 곳이다. 고용희는 일본에서 태어났다고들 하지만 북제주군 출생설도 있다. 아버지 김정일이 한눈에 반해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으나 ‘숨겨진 여인’으로 살다 2004년 숨진 어머니에 대해 김정은은 회한이 깊다고 전해진다.
▷남북 정상의 공동 식수는 어제가 처음이다. 2007년 10·4정상회담 때 노무현 대통령은 평양 중앙식물원에 김정일과 소나무를 같이 심으려고 양 정상의 이름이 적힌 250kg짜리 표지석을 가져갔지만 김정일이 나타나지 않아 나무만 심고 표지석은 가져왔다. 그해 대선 하루 전날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평양에 가서 노 대통령 이름만 적힌 작은 표지석을 놓고 왔다.
▷어제 남북 정상이 손잡고 걸은 길로 1953년 4월 27일 490명의 인민군 부상병 포로들이 북으로 돌아갔다. 이어 석 달 뒤인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판문점의 팽팽한 긴장은 1976년 북한군 동향 파악에 장애가 되는 미루나무를 자르려던 미군 2명을 북한군이 살해하는 ‘도끼만행 사건’으로 극점에 달했다. ‘정전둥이’로 태어나 도끼만행 사건 당시 작전에 투입됐던 남자가 대통령이 돼 동갑내기 여성의 아들과 심은 동갑 소나무가 한없이 무성해져도, 아무도 경계근무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그런 날을 기다려본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