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회담 성과, ‘비핵화 시간표’ 완성으로 결실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 시간) “북한과의 회동이 3, 4주 안에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며 북-미 정상회담이 다음 달 안에 이뤄질 것임을 예고했다. 그동안 밝혀온 ‘5월 말∼6월 초’에서 2, 3주가량 앞당긴 셈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 정상회담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북-미 회담을 가급적 조속히 개최하자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한미 두 정상은 유례없이 75분 동안이나 장시간 통화하면서 북-미 회담 개최 후보지 2, 3곳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다음 달 안에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할 것이며 이때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하겠다고 밝혔다고 청와대가 어제 공개했다. 김정은은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시설보다 큰 2개의 갱도가 더 있고 아주 건재하다”며 단순한 쇼가 아닐 것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또 “우리와 대화해보면 내가 미국에 핵을 쏘거나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신뢰가 쌓이고 종전(終戰)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며 미국과의 대화에 열의를 보였다.
4·27 ‘판문점 선언’이 나오자마자 남북, 북-미 간 움직임은 흡사 급물살을 탄 듯하다. 비록 선언적 문구지만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 명문화된 것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고 평가하면서 북핵 해결의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그런 의미에서 판문점 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 나아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여정에서 일단 순조로운 출발을 예고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비핵화 문제에 관한 한 판문점 회담은 북-미 회담의 길잡이에 그쳤다. 비핵화의 방법과 절차, 시간을 정하는 로드맵의 완성은 북-미 정상에게 넘겨진 만만치 않은 숙제다. 김정은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와 트럼프 대통령의 빅뱅식 일괄 타결 해법 사이의 간격도 여전하다.
나아가 북한이 비핵화의 대가로 내밀 청구서도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에게 향후 북-미 대화에 열의를 보이며 신뢰 구축과 종전, 불가침을 거론했다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요구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 합의 속에 감춰진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북-미 간 협상의 진퇴가 결정될 수 있다. 과거 북핵 협상 과정에서, 그리고 합의문 서명 이후에 늘 그랬듯 북한은 변화무쌍한 협상전술로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김정은의 변신을 낙관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이유다.
비핵화 로드맵 완성은 북-미 정상회담에 넘겨졌지만 이것이 미국과 북한 간 문제만은 될 수 없다.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문제이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도 민감한 이해관계를 따지게 될 사안이다. 당장 우리 안보와 직결된 한미동맹의 위상 변화가 가져올 여파는 작지 않을 것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지의 문제도 향후 협상에서 논의될 수 있다고 했다. 비상한 경계심과 함께 한미 간 긴밀한 공조체제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는 대목이다. 주한미군의 철수가 아니더라도 규모 축소나 역할 변경과 관련된 논의에서 우리의 안보가 소홀히 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강대국 간 치열한 각축의 현장이자 패권 추구의 길목이었다. 그래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지구상 마지막 냉전지대였던 동북아를 새로운 평화와 협력의 지역공동체로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주변 강대국의 셈법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예기치 못한 변수가 돌출하는 위험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 이번 판문점 회담의 성과를 기반으로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와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퍼즐을 맞추는 외교전의 주역을 맡게 됐다. 정직한 중개자에서 한발 나아가 창의적 외교가로서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만드는 데 중심 역할을 맡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