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문’을 공동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 판문점=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이번 ‘4·27 판문점 선언’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론이 없는 ‘위장 평화 쇼’라는 것이다. 북한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이번 발표와 거의 유사한 한반도 완전 비핵화, 평화협정 체결, 이산가족 상봉 등을 약속했었다. 심지어 10년 전에는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까지 폭파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경제적 원조만 받고 파국을 만들었다.
북한은 정말 ‘양치기 소년’일까? 필자는 북한법을 연구하고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가 담겨 있는 선언문을 그대로 내부 언론에 보도하는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 북한은 최근 중국 시진핑이 시도한, 경제는 풀어주면서 정치권력은 강화하는 방식을 지켜봤다. 이러한 대외 환경의 변화뿐만 아니라 내부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탈북자가 북한에 있는 가족과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와 음악이 유행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도 북한의 일정한 경제 성장은 통일 비용 감소라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헌법에서 평화통일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이상 대화와 소통을 통한 현재의 접근 방식이 바람직하다. 냉전시대의 이념적 도그마에 빠져 시대의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지만 시도하면 무엇인가 얻을 수 있다. 북한과의 지속적인 접촉 시도는 평화통일을 앞당길 가능성이 있다.
가장 최근에 통일을 이룬 독일과 예멘, 두 나라의 경우를 살펴보자. 평화적 방식을 선택한 독일은 통일 이후 눈부신 경제 발전을 거듭하며 유럽 최강국으로 성장했다. 무력에 의하여 통일된 예멘은 아직까지도 지역과 계층 간 갈등과 경제적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방식의 통일이 바람직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폭넓게 소통하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어떠한 체제의 그물로도 자유의 바람을 막을 수는 없다. 동독은 주민투표를 통해 서독에 흡수되는 길을 선택했다. 남북 교류를 거치며 우리도 이런 방식의 민족 통일을 이룰지도 모른다.
이번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남북 교류가 활발히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교류에 부수하여 수많은 계약과 지침이 만들어질 것이 예상된다. 경험적으로 교류에는 필연코 분쟁의 위험이 존재한다. 이러한 분쟁을 사전 또는 사후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률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북한법에 대한 자료 수집이 용이하지 않아 연구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판문점 선언을 통하여 북한법제와 관련된 자료의 수집, 정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통일시대에 우리 민족에게 가장 적합한 법률을 제정하기 위한 전 단계로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북한변호사회와의 교류를 제안하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을 기대한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