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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관전하면 꼭 승리”… “4강 PO면 충분하다 예상”

입력 | 2018-04-30 03:00:00

프로농구 SK 문경은 감독 부부




SK 문경은 감독(오른쪽)이 아내 김혜림 씨와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24일 결혼 20주년을 맞은 문 감독은 SK를 18년 만의 정상으로 이끌며 우승 반지를 기념 선물로 마련했다. 문 감독은 “농구를 전혀 몰랐던 아내가 전문가가 다 됐다”며 웃었다. 용인=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챔피언결정전 2연패 뒤 4연승으로 프로농구 SK의 V2를 일군 문경은 감독(47)에게 우승 직후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바로 ‘집사람’이었다.

“아내에게 올 시즌 두 가지 소원이 있었어요. 딸 대학 가는 거랑 남편 4강 플레이오프 가는 거랑. 고3 수험생에 남편까지 뒷바라지하느라 올해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문 감독의 아내 김혜림 씨는 두 가지 소원을 초과 달성했다. 딸은 미대생이 됐고 남편은 4강을 넘어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기에.

커피를 좋아하는 문 감독과 그의 아내를 22일 경기 용인 자택 길 건너편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경기 전, 후 문 감독의 손에는 어김없이 스타벅스 커피가 들려 있다. 경기 전 마시는 커피는 본인이 직접 사오고 경기 후에 마시는 커피는 골수팬의 오랜 조공(朝貢)이다. 하지만 문 감독은 결혼 초만 해도 ‘커피 쓴데 왜 먹느냐’던 사람이었다.

“집사람 때문에 커피 마니아가 됐죠. 연애할 땐 커피 때문에 싸웠다니까요. 운전하고 가는데 굳이 커피를 마시겠다고 해서 커피집 찾느라 고생 좀 했죠. 왜 이걸 줄 서서 사먹나 했는데 이제는 제가 알아서 먼저 찾아가요. 하하.”

문 감독에게 커피가 그랬듯, 아내 역시 문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 농구의 ‘ㄴ자’도 모르던 사람이었다. “상무 복무 시절 경기 구경 오라고 해서 그때 처음 현장에서 봤어요. ‘이거 몇 명이서 하는 거야’라며 물어볼 정도였다니까요(웃음).”

그랬던 아내 김 씨가 어느새 농구 박사라도 된 듯했다. 4강을 목표로 정한 데 대해 김 씨는 “우승은 힘들다고 봤어요. 김선형 선수도 없었고 부상에서 회복해도 제 기량이 나타날지도 미지수였고. 또 KCC의 멤버가 좋다고 생각했어요.” 아내가 술술 답변을 이어가자 문 감독은 “전문가라니까요∼”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SK 문경은 감독(오른쪽)이 아내 김혜림 씨와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24일 결혼 20주년을 맞은 문 감독은 SK를 18년 만의 정상으로 이끌며 우승 반지를 기념 선물로 마련했다. 문 감독은 “농구를 전혀 몰랐던 아내가 전문가가 다 됐다”며 웃었다. 용인=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문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1차전 때 입었던 독특한 자주색 재킷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도 소개했다. “정규리그 6라운드 DB와의 마지막 대결에서 입었던 옷이었어요. (이)상범이 형(DB 감독)이 딱 보더니 놀리더라고요. 그날 이겨서 챔프전 첫 경기 때도 입고 갔죠. 그런데 1차전 지고 나서 바로 폐기했어요.” 문 감독은 아내의 ‘징크스 관리’ 역시 자신 못지않게 “살벌하다”고 했다. 김 씨는 “뭐든 이겼던 날 그대로예요. 물건 위치도 그대로, 절대 안 옮겨요”라며 웃었다.

우승을 확정했던 챔피언결정전 6차전은 물론 이번 플레이오프 기간 내내 아내는 승률 100%의 ‘승리요정’이었다. 아내가 경기장을 찾은 4강 플레이오프 1, 2차전 안방경기를 모두 이겼고 챔프전 때도 아내가 온 3, 4차전 안방경기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래서 챔프전 5차전에는 특별히 원주까지 방문 출동해 승리를 함께했다. “경기장에 잘 안 가는데, 올 시즌은 특히 딸이 고3이라 더 못 갔어요. 정시 발표 나고 보니 플레이오프 하고 있더라고요.”

‘남편이 선수로 뛸 때도 승리요정이었냐’는 질문에 김 씨는 “그때는 팀이 이기고 지고는 신경 안 썼어요. 남편이 얼마나 잘하는지만 봤죠. 남편도 예전에는 본인이 더 중요했을 거예요. 당신도 그러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문 감독은 “난 못한 날이 별로 없어서…”라며 웃었다.

이런 말을 ‘뻔뻔히’ 해도 될 만큼 남편은 연세대 시절부터 수많은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 스타였다. 하지만 정작 동문이었던 아내는 ‘연세대 문경은’의 존재를 몰랐다. 1971년생 동갑이지만 생일이 빨라 학번이 문 감독보다 하나 빠른 김 씨는 연고전(연세대-고려대 정기전)도 1학년 때 가본 게 마지막이었다. 음대생이었던 김 씨는 운동에는 관심이 없었다.

“연애 시절에 아내가 새 차를 샀어요. 속초로 놀러가던 중 차를 휴게소에 잠깐 세웠는데 수학여행 가던 여고생들이 저를 알아본 거예요. 당황해서 차 안으로 재빨리 들어갔는데 학생들이 차를 두드리고 난리가 났죠. 차가 푹 찌그러져 있었어요. 새 차였는데. 하하.” 듣고 있던 김 씨는 “학생들이 (내가 미웠는지) 내가 타고 있던 쪽을 발로 찼다”며 웃었다. 남편의 인기를 처음 실감했던 순간이었다.

부부는 24일로 결혼 20주년을 맞았다. 아내는 어느새 경기 전략과 선발 라인업을 물어보는 ‘총감독’이 됐다. 문 감독은 “기자보다 더 자세히 물어본다”고 했다.

남편은 2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세 번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선수, 코치, 감독을 거치는 20년 동안의 우여곡절을 부부는 함께 겪었다. 문 감독 부부는 이구동성으로 “선수 때가 가장 좋았다”고 한다.

아내 김 씨는 “선수 때는 우리 남편만 잘하면 만족했어요. 시즌 끝나면 휴가도 있고. 그런데 지금은 시즌 끝나고 더 바빠요”라고 말했다. “요즘 건배사로 ‘순간을 즐기자’를 쓴다”는 문 감독은 “이번 우승을 얼마나 오래 즐기겠어요. 다시 시작이죠”라는 말로 다음 시즌 각오를 밝혔다.
 
용인=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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