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판문점 대화
“(서울과 평양 간) 경평 축구보다 농구부터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난달 27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스포츠 교류가 화제로 오르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같이 말했다. 김정은은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을 북한으로 초청했을 정도로 ‘농구광’이다.
이어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세계 최장신인 리명훈 선수(235cm)가 있을 때만 해도 우리가 강했는데, 은퇴한 뒤 약해졌다. 이제는 남한의 상대가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남한에는 (키가) 2m가 넘는 선수들이 많죠?”라고 물었다. 문 대통령은 30일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김정은과의 대화 중 일부를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에 대해 “솔직담백하고 예의가 바르더라”고 표현했다. 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경호하는 주영훈 경호처장은 “(평화의집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만찬장으로 올라갈 때 문 대통령에게 먼저 타시라고 김 위원장이 손짓을 했다”며 “이어 리설주 여사가 타려고 하자 김 위원장이 슬그머니 손을 뒤로 잡아당기며 김정숙 여사가 먼저 타도록 했다”고 했다.
새소리, 바람소리를 배경으로 두 정상이 30분간 진행했던 ‘도보다리 단독 정상회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사실 그렇게 좋은지 몰랐다. 회담이 끝나고 청와대로 와서 방송을 보니 내가 봐도 보기가 좋더라”고 했다. 도보다리 회동은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윤재관 행정관의 제안으로 추진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실무 논의에서 의전을 놓고 이견이 있었지만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남측 제안대로 하자’며 손을 들어줬다”고 전했다. 김씨 일가 3대의 의전을 담당한 김창선이 2월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함께 방남해 우리 측의 경호·의전을 경험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 김창선은 두 정상이 소나무 식수를 할 때 사용한 백두산 흙에 대해 “백두산이 화산재로 덮여 있어 흙이 없다. 그래서 만경초라는 풀을 뽑아 그 뿌리에 있는 흙을 털어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두 정상은 도보다리 회동 직후 10여 분간 별도의 단독 대화를 더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두 정상이 평화의집으로 오셔서 공동 서명을 바로 안 하시고 다시 접견장에 들어가셔서 배석 없이 얘기를 좀 더 나누셨다”고 전했다. 조 장관은 이 자리에서 두 정상이 북-미 정상회담 준비, 판문점 선언 이행 등과 관련한 논의를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편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이날 김일성이 조직한 항일단체인 ‘조국광복회’ 결성 82주년 기념일인 5월 5일부터 한국보다 30분 느린 ‘평양시’를 앞당겨 남북 시간대를 통일한다고 밝혔다. 전날 청와대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울과 평양 시계가 2개여서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북한이 후속 조치에 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