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 가지고 온 것은 평양냉면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김정은이 방한 때 ‘전용 화장실’을 준비했다며 호위총국 출신 탈북자를 인용해 “배설물에는 건강 상태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김정은이 회담장(평화의집) 화장실 사용을 거부했다”는 미 CBS 보도와도 연결되는 것이다.
▷청와대는 김정은이 ‘사용 후 용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평화의집 화장실 정비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이용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적대국에서 정상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는 국가원수의 건강을 일급 기밀로 관리하는 외교 관례이기도 하다. 2000년 김정일이 “힘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다”고 했던 평양의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도 같은 관례를 따랐다.
▷소변, 대변은 오래전부터 건강을 살펴보는 척도였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어의(御醫)가 손가락으로 왕의 용변을 찍어 맛보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어의들은 색과 냄새 등 관찰에 그치지 않고 맛을 보고 기록으로 남겼다. 미국 대통령은 외국에 가면 경호 요원들이 대통령의 배설물은 물론이고 만찬장에서 쓴 종이 냅킨까지 남김없이 본국으로 가져간다. 유전자(DNA) 정보 유출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조치다.
▷첩보기관들은 적대국 정상의 건강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 1959년 소련의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의 방문을 앞두고 미 중앙정보국(CIA)은 숙소의 변기 파이프를 따로 빼고 음식에 배변촉진제까지 넣어 배설물 확보에 성공했다. 1949년 소련은 국빈으로 온 중국 국가주석 마오쩌둥(毛澤東)의 것을 들여다봤다. 정상회담 때 김정은은 우리가 준비해 놓은 펜도 쓰지 않았다. 일본 언론은 “펜촉의 독 등 만약을 대비한 것”이라고 했다. 남북 화해로 가는 길이 가깝지만은 않은 것 같다.
조수진 논설위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