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윤 잡지 에디터
여행은 딱히 수고롭지 않았다. 사실 꽤 좋았다. 우리는 도심 상점가와 외곽 유원지를 누볐고, 해산물 덮밥과 바나나 크레페를 먹었으며, 라이브 재즈 클럽이나 가라오케 주점, 여장남자들이 운영하는 바에서 술을 마셨다. 어느 새벽에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앉아 하이볼을 마시기도 했다. 잔뜩 취했던 나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늘어놓았고, 어쩌다 책 이야기까지 했더랬다. “제가 좋아하는 책 중에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이라는 게 있는데요….” 맥락은 기억나지 않는다. 맥락이란 게 없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께 소개했던 책,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은 작가 존 버거의 산문집이다. 첫 챕터 ‘리스본’이 백미로, 여행기 형식을 갖춘 글에 ‘작고한 어머니와 광장에서 마주쳤다’는 픽션이 천연덕스럽게 섞여 있다. 그리하여 그는 어머니의 영혼과 함께 여행한다. 가슴 저린 서사나 극적 연출은 없다. 장소를 바꿔 가며 둘의 대화가 이어질 뿐인데, 사실 그래서 더 애잔하기도 하다. 작가가 그리워한 것이 그저 어머니와의 대화, 혹은 그 속의 특정한 분위기였다는 게 느껴져서다. 연관 검색어처럼 ‘카메라 루시다’도 떠올랐다. 사진 평론의 명저로 손꼽히는 책인데, 재미있게도 저자인 롤랑 바르트는 이 책의 출발점이 어머니의 사진이었다고 밝혔다. 그녀가 다섯 살이었을 때의 사진, 즉 자신이 알 수 없는 사진을 들여다보다 ‘어머니를 마침내 어머니로 되찾았다’는 것이다. 책의 존재를 빌려 내가 어머니께 슬쩍 전하고자 했던 건, 아마도 그런 정서였던 것 같다.
‘어머니’를 주제로 한 차고 넘치는 책 중 상술한 두 권의 책을 기억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그 방식이 지극히 개별적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희생만 하시며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았던 분’ 같은 모티브로 소비하지 않기 때문에. 다만 어머니와 걷고 싶어 하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더 알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런 마음은 아무래도 ‘효도’ ‘자식 노릇’ ‘봉양’ 같은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일간지 칼럼에 쓰기엔 너무 낯간지러운 단어로만 가능할 성싶다.
오성윤 잡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