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농구교류 거론되며 화제 “10년 넘게 보며 친해져 호형호제… 한국 왔을땐 375mm 농구화 선물” 北농구, 2010년이후 국제경기 불참… 여자는 단일팀 구성 걸림돌 적어
2003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통일 농구 기념 회식 자리에서 리명훈(왼쪽)이 따르는 술을 받고 있는 허재 남자 농구대표팀 감독. 허 감독은 “백두산 소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명훈이는 큰 키만큼이나 주량도 엄청났다”고 소개했다. 동아일보DB
“명훈이 한번 만났으면 좋겠네요. 이젠 걔도 좀 늙었겠죠.” 선수 시절 ‘농구 대통령’으로 이름을 날린 허재 남자 농구대표팀 감독(53)은 한때 북한의 세계 최장신 농구 선수로 유명했던 리명훈(49·235cm)과의 추억이 많다.
그래서인지 허 감독은 최근 리명훈이라는 잊혀졌던 이름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데 반가움을 표시했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리명훈 선수가 있을 때만 해도 우리가 강했는데 은퇴한 뒤 약해졌다”고 말한 내용이 공개된 것. 그러면서 농구팬인 김 위원장이 남북 농구 교류를 언급해 그 성사 여부에도 관심이 높아졌다.
허 감독이 리명훈을 마지막으로 본 건 2003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통일농구대회에 선수로 출전했을 때다. 당시 회식 자리에서 리명훈은 깍듯하게 허 감독에게 술을 따르기도 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에선 허 감독이 북한 대표로 출전한 리명훈을 만나러 농구장까지 찾아가 행운의 열쇠, 전자시계, 사이즈가 375mm나 되는 농구화를 선물했다. 리명훈 아내를 위해 따로 팔찌까지 준비했다. 당시 만남에 앞서 리명훈은 한국 농구 관계자들에게 허 감독의 아시아경기 출전 여부를 묻기도 했다.
‘골리앗’ 서장훈이 왜소해…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에서 북한 리명훈(오른쪽)이 한국 서장훈에 앞서 공을 따내고 있다. 207cm인 서장훈이 235cm의 리명훈 옆에서 왜소하게 보인다. 동아일보DB
허 감독은 “모든 경기 일정을 마치고 호텔 방에서 술 대결을 벌인 적이 있는데 주량이 대단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안주 삼아 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김 위원장이 남북 농구 교류를 강조하면서 대한민국농구협회도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농구협회는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남북 단일팀 구성 의향을 밝혔다. 아시아경기에 출전하는 허 감독은 “우리 팀에 부상 선수가 많다. 하지만 북한 남자 농구가 국제무대에서 사라진 지 오래여서 전력이 어떤 수준인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고 말했다.
북한 남자 농구는 리명훈이 뛰던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에서 5위를 차지할 정도로 상위권 실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를 끝으로 공식 대회에서 자취를 감출 만큼 전력이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여자 농구는 지난해 아시아컵을 비롯해 최근까지 국제대회에 출전한 바 있다. 팀 내에 득점력을 갖춘 장신 선수들도 포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역 문제 등이 걸려 있는 남자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시아경기 남북 단일팀 구성에 걸림돌이 적다는 게 농구협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농구협회는 과거 서울과 평양 등을 오가며 열었던 통일농구 형식의 남북 올스타전,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대학대회인 아시아퍼시픽 대학 챌린지에 북한 팀 초청 등도 교류 방안으로 거론하고 있다.
허 감독은 “남과 북이 코트에서 하나가 된다면 농구 인기에도 큰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론 명훈이에게 술 한잔 권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