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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해고 가장 어려운 나라… 신규채용 줄일 수밖에 없어”

입력 | 2018-05-02 03:00:00

기업들, 희망퇴직 규제법안 반발




“정리해고는 요건이 복잡해 사실상 어렵고, 지난해 9월 저(低)성과자 해고(일반해고) 지침까지 폐기된 마당에 희망퇴직까지 규제하면 어떻게 인력을 운용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국내 한 대기업의 인사팀 관계자는 1일 정부가 추진하는 ‘희망퇴직 남용 방지법’에 대해 “법안이 현실화되면 결국 신규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는 고령화시대를 맞아 중장년 인력을 활용하려면 희망퇴직을 규제하고 실제 퇴직 연령을 높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른바 ‘강퇴’(강제 퇴직)나 ‘찍퇴’(찍어서 퇴직)로 이어지는 희망퇴직의 요건과 절차를 엄격히 해서 중장년의 고용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각종 규제를 풀고 고용 유연성을 높여도 모자랄 판에 과잉 규제에 나선다는 비판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 정부 “고령화시대 대비하려면 필수” 주장

정부는 연구 용역에서 △현재 법정 용어가 아닌 희망퇴직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희망퇴직 실시의 요건과 절차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일정 인원 이상의 희망퇴직을 실시할 때 노조 또는 근로자 대표의 동의를 받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국GM처럼 희망퇴직 시행 시 노조와 협의하거나 동의를 받는 곳도 있지만, 현재는 법으로 규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사는 노조 동의 없이 희망퇴직을 실시할 수 있다.

정부는 개정안에서 근로자가 희망퇴직에 동의한 뒤 사직서를 제출해 수리되더라도 2주간의 숙려기간을 두는 이른바 ‘숙려기간제(쿨링오프)’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 기간에 근로자가 마음이 바뀌면 회사를 관두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법정 정년(60세)과 실제 퇴직 연령 사이의 격차를 줄여야 고령화시대에 대비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7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은퇴 연령은 평균 50.2세에 불과했다.

○ 기업 “해고도, 퇴직도 가장 어려운 나라 될 것”

하지만 정부 뜻대로 법이 시행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규제 폭탄’을 맞게 된다. 현재 기업이 희망퇴직을 실시하려면 근로자 본인의 동의만 필요하지만, 앞으로는 노조 동의까지 추가로 받아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경영계는 60세 정년 시행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업 부담이 최고조인 상황에서 희망퇴직마저 규제하면 청년 일자리 창출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영계 관계자는 “한국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해고가 가장 어려운 나라 중 하나인데, 희망퇴직 시행도 가장 어려운 나라가 되겠다는 것”이라며 “사실상 신규 채용을 하지 말란 얘기”라고 말했다.

희망퇴직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문제다. 2009년 쌍용자동차는 약 1000명을 정리해고하면서 극심한 노사 갈등을 빚었다. 반면 한국GM은 군산공장을 폐쇄하면서 최근 정리해고 없이 희망퇴직만 실시해 현재 1200여 명이 신청했다. 이처럼 희망퇴직은 정리해고를 막는 나름의 완충 역할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법원도 희망퇴직을 ‘해고 회피 노력(해고로 인한 파국을 막는 사용자의 노력)’으로 인정한다. 근로자도 특별 퇴직금 등 인센티브를 받기 때문에 해고보다는 훨씬 유리하다.

○ 민법 영역을 노동법으로 규제?

희망퇴직 남용 방지법은 법적인 문제도 많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희망퇴직은 민법, 해고는 노동법의 영역으로 본다. 해고는 근로자 의사와 상관없이 사용자가 강제적으로 실시하지만, 희망퇴직은 근로자가 합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결국 해고는 근로자의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노동법으로 보호해야 하지만, 희망퇴직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합의한 ‘계약 해지’이기 때문에 노동법으로 규제하는 건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희망퇴직의 남용을 방지하는 보완책은 필요하지만 근로자의 판단과 사직의 자유에 속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규제는 매우 조심스럽고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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