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물살 탄 北-美회담]문재인 대통령, 김정은에 전한 내용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신(新)경제 구상’이 담긴 휴대용저장장치(USB 메모리)를 전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제 협력 문제는 북-미 정상회담 뒤로 미뤄놓고 있는 청와대는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단순한 ‘퍼주기’가 아닌 ‘공동 번영’에 방점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일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전달한 핵심 내용을 읽을 수 있는 단초는 지난해 9월 러시아 동방경제포럼”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한국과 러시아는 “한-러 경제공동위원회에서는 가스관과 전력망, 한반도종단철도(TKR)-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 등 남-북-러 3각 협력 사업에 대한 협의 채널 재개 및 공동연구 수행 등을 진행한다”는 데 합의했다. 문 대통령도 한-러 정상회담에서 “한-러 협력 자체를 목표 삼아 양국이 협력하되 이후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북한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중 철도 연결은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서도 합의한 내용이다. 판문점 선언에는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남북을 잇는 철도를 러시아까지 확대해 유라시아 권역을 묶겠다는 것이 청와대의 구상이다. 또 문 대통령은 남-북-일-러는 물론이고 중국과 몽골까지 포함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도 염두에 두고 있다. 동북아의 전력망을 연결해 안정적인 전력 수급 체계를 구축하고, 더 나아가 러시아, 몽골의 재생에너지까지도 활용하겠다는 것.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건넨 자료 중 발전소 관련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말한 것도 이 구상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과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처럼 단순히 북한에 전력을 공급하는 수준을 넘어선 접근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런 문 대통령의 신경제지도 구상은 남북뿐만 아니라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주변 국가의 참여를 전제로 하고 있다. 다자간 프로젝트가 많아질수록 우발적 국지전의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참여 국가가 많아지면 자연히 한반도 평화를 유지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며 “앞으로의 남북 경협은 북한을 도와주는 차원을 넘어 한국 등 주변 국가들도 함께 발전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청와대는 구체적 세부 내용은 함구하고 있다. “실질적인 북핵의 폐기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경제 협력을 논의하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북한에 ‘신경제 구상’을 제안하는 것은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는 전제하에 이뤄질 가을 평양 방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