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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주성원]기하학 빠진 수학 시험

입력 | 2018-05-03 03:00:00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안으로 들어오지 말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 정문에 써 있었다는 글귀다. 기하학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학문 중 하나다. 기원전 6세기 피타고라스가 증명한 정리를 여전히 배우고 있다. 기하학의 영어단어(geometry)에 지형(geo)과 측량(metry)의 어원이 포함된 데서 알 수 있듯, 기하학은 토지의 측량을 위해 도형의 원리를 논리적으로 연구하면서 시작된 학문이다. 기원전 3세기 유클리드가 집대성한 이후 고대 그리스에서는 기하학이 논리를 배우는 기초 학문으로 여겨졌다.

▷역사는 오래됐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 첨단 기술의 기초 학문으로서의 입지는 더 튼튼해지고 있다.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어제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토론회에서 “평창 겨울올림픽의 오륜기 드론쇼도 공간에 대한 수학적 사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 3D프린터 등 첨단 과학의 기본이 되는 학문이 ‘기하와 벡터’ 분야”라고 설명했다.

▷2월 교육부가 2021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기하학을 이과 수학 출제 범위에서 빼기로 한 데 대한 반발이 크다. “심화 과정인 기하를 수능 과목에서 빼 사교육비와 학습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주장이다. 수학계가 즉각 “수학에서 기하가 차지하는 비중을 간과해 미래 이공계 인력의 기초실력 배양과 역량 강화가 훼손되지 않기 바란다”는 성명을 냈고 과학계도 3월 이 결정을 철회하라는 청와대 청원을 냈다.

▷무엇보다 ‘쉬운 수학’을 지향하는 교육부의 정책이 궁극적으로 한국의 첨단 기술 경쟁력을 갉아먹을지 모른다는 학계의 우려가 크다. 이향숙 대한수학회장은 “기하학은 지식 습득이 아니라 창의력 개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며 “어렵다고 뺄 것이 아니라 쉽게 가르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의 대입시험에는 기하학 심화 과정이 포함돼 있다. 고교는 건너뛰고 대학부터 시작하라는 우리와는 출발선부터 다르다.

주성원 논설위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