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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 회동?… “잘 풀리면 평양에 맥도널드매장 전격 상륙”

입력 | 2018-05-05 03:00:00

[위클리 리포트]정상회담의 ‘음식 외교학’




#1 “불은 냉면이라도 먹겠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가 한창이던 지난달 초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같이 쐐기를 박았다. 당초 청와대 내에서는 “냉면 사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칫 불을 수가 있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평양냉면’이라는 상징성에 문 대통령이 힘을 주면서 메뉴 논의는 사실상 끝이 났다.

#2 “북한이 주는 음식은 먹지 않겠다.”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북한 평양을 방문했던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부장관은 일본에서 직접 도시락을 공수해갔다. 당시 두 나라는 일본인 납북 피해자 진상 규명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납북 일본인 13명 중 8명이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이 정상회담 직전 전해져 일본 측은 경악했다. 일본이 준비해간 도시락은 북한에 대한 불쾌감과 강경함을 보여주는 아이템이었다.

4·27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푸드 디플로머시(Food Diplomacy·음식외교란 뜻)’가 화제다. ‘세기의 만남’이 될 북-미 정상회담은 회담 일자, 장소, 배석자 등이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주앉아 식사를 할지, 한다면 무슨 메뉴를 올릴지 자체가 회담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상징적 메시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두 사람이 함께 햄버거를 먹는 장면이 연출될 것인가.



○ 음식은 메시지다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평양냉면이 갑작스레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부상하자 유사한 사례로 미국과 프랑스 간 ‘감자튀김’ 사건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2005년 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미-프랑스 정상회담이 끝난 뒤 양국 정부는 “정상들(미국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프랑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 만찬 때 감자튀김을 즐겼다”고 강조했다. 물론 만찬에선 바닷가재가 들어간 리조토와 안심 스테이크 등이 메인 요리였고, 감자튀김은 사이드 요리에 불과했다. 미국과 프랑스가 유독 감자튀김을 강조한 데는 배경이 있다. 당시 프랑스는 사담 후세인이 이끌던 이라크 공격을 결정한 미국에 사사건건 반대했고, 약이 오른 미 정계에서는 노골적인 프랑스 거부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미 의회 식당에선 감자튀김의 통상적 명칭인 ‘프렌치 프라이즈’ 대신 ‘프리덤 프라이즈’로 바꿔 불러 국제적인 화제가 됐다. 프랑스 측은 ‘엉뚱한 화풀이를 하지 말라’며 미국을 비꼬기도 했다. 미-프랑스 정상회담 만찬에서 제공된 감자튀김은 두 나라 정상 간의 화해 의지를 담은 메시지였던 것이다.

유대교, 이슬람교 등 종교와 상대국 정상의 건강상태 등을 고려한 ‘배려음식’은 실타래처럼 꼬인 의제를 푸는 마스터키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신경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2014년 미국은 ‘캐비아 좌파’라는 비난에 시달리던 프랑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게 캐비아 요리를 대접해 분위기가 싸늘해지기도 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햄버거’가 북핵 해법의 아이콘으로 떠오를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할지, 식사를 함께할지, 한다면 누가 호스트가 돼 어떤 형식으로 진행할지 등 전혀 알려진 게 없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6월 미 조지아주 애틀랜타 유세 때 “내가 김정은을 만나러 북한에 갈 생각은 없지만 (그가) 온다면 만나겠다. 국빈만찬이 아니라 회의 탁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더 나은 핵협상을 하겠다”고 밝힌 게 두고두고 회자되면서 ‘햄버거 회동’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 햄버거 외교, 평양에 맥도널드 매장 오픈으로?

햄버거가 북-미 정상회담 음식으로 결정될 경우 전문가들은 ‘햄버거의 포지션’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한다. 두 정상이 간단히 식사를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국빈만찬 대신 회의 탁자에서 햄버거를 먹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일반적인 정상회담처럼 식사가 진행된다면 코스 요리 중 한 부분에서 햄버거가 특별 출연하는 모습이 연출될 수도 있다.

2008년 3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청와대에서 양식 요리를 담당했던 ENA호텔 한상훈 총주방장은 “정상회담 식사는 격식과 대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아주 파격적인 형식 파괴는 이뤄지기 어렵다”며 “만약 북-미 정상회담에서 햄버거가 식사 때 제공된다면 코스 요리 중 하나로 햄버거가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햄버거가 북-미 정상회담에 등장한다면 △쇠고기 패티의 크기와 익힘 정도 △야채 종류 △치즈의 양과 종류 △빵 등이 어떤 스타일일지도 관심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맥도널드의 ‘빅맥’이나 ‘쿼터파운더’와 비슷한 햄버거일지 아니면 이와는 다른 스타일의 햄버거일지에 시선이 집중된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는 햄버거광인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이 최대한 반영된 햄버거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북-미 정상회담이 파격적이고 특별한 만남인 만큼 기념의 의미를 담은 햄버거를 선보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기홍 우석대 외식산업조리학과 교수(2002년 4월∼2008년 8월 청와대 양식담당 요리사)는 “회담 결과가 좋아 정상회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면 특별한 재료나 소스 등을 첨가하고, ‘판문점 버거’ ‘평양 버거’ ‘코리아 버거’ 같은 이름이 붙는 햄버거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정상이 먹는 햄버거를 누가 만들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정상회담 시에는 초청국이 모든 음식을 담당한다. 제3국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은 양측이 협의해 어느 나라가 담당할지를 결정한다. 최근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부각되는 판문점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방문하는 모습이니 북한이 음식을 준비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식 햄버거’를 내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햄버거는 난도가 낮은 음식이고, 정상회담 전에는 양측 의전 관계자들이 실제 제공될 음식의 맛과 모양을 세밀하게 체크하는 과정이 있다”며 “북한 측에서 큰 어려움 없이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햄버거를 먹어본 적이 있는지는 전혀 알려진 게 없다. 스위스 유학 시절 햄버거의 존재를 경험했을 가능성은 있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이 잘 풀릴 경우 조만간 평양에 맥도널드 매장이 들어서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형 turtle@donga.com·이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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