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M.T. 앤더슨 지음/장호연 옮김/546쪽·2만2000원·돌베개
레닌그라드에서 나고 자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포화가 빗발치는 그곳에서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를 작곡했다. 교향곡의 웅장한 선율은 가족을 잃은 시민들을 어루만졌고, 살아남은 시민들을 다독였으며 전선의 군인들을 결속시켰다. 이 곡은 서방세계에서도 극찬을 받았다. 소비에트는 ‘교향곡 7번’의 악보를 30m 길이의 마이크로필름에 담아 미국에 전했다. 1만6000km의 여정 끝에 뉴욕으로 전해진 이 곡은 곧 서방 각국에서 널리 연주됐고, 연합국이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추축국에 맞서 동맹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소비에트 당국은 ‘교향곡 7번’ 발표 이후 쇼스타코비치를 반나치 투쟁의 선봉으로 치켜세웠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에게 쏟아진 찬사를 반겼을 것 같지는 않다. 그에게는 소비에트도 나치도 똑같은 억압의 주체에 불과했다. 그는 “레닌그라드는 스탈린이 파괴했고 히틀러는 그저 마무리했을 뿐”이라고 회고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