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차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참석차 필리핀을 방문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4일 “일본과 통화스와프 재개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화스와프는 긴급할 경우에 상대방 국가에 자국 통화를 맡기고 달러나 상대국 통화를 빌려오는 제도다. 미리 정해둔 환율에 따라 즉각 꺼내 쓸 수 있는 일종의 외환 마이너스 통장 격이다.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은 2001년 7월 시작했다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2015년 2월 만기를 끝으로 연장되지 않았다. 이 총재의 발언은 외교 갈등으로 끊겼던 협정을 이제 두 나라 경제협력 차원에서 재개하자는 취지다.
한일 양국은 2016년 8월 통화스와프 논의를 재개하기로 합의했으나 일본이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항의하며 모든 논의가 중단됐다. 소녀상 문제는 심각한 안보상 이해관계라기보다는 국내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다. 이런 정치외교 사안을 경협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은 일본이라는 선진 경제대국답지 못한 태도다.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이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지만 외환사정에 당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우리 정부는 그동안 외환보유액 확충, 한중 통화스와프 체결 등 안전판을 상당히 구축해 놓았다. 논의 재개는 추진하되 우리가 여기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다. 이 총재가 “정치적 문제로 중단된 한일 통화스와프를 금융협력 차원에서 논의해보자”고 밝힌 것은 적절한 수준의 접근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