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러기와 고니에 비유해 큰 뜻을 지칭하는 홍곡지지(鴻鵠之志)는 한국에서도 널리 쓰이는 사자성어다. 진나라를 무너뜨린 진승은 출신이 천한데도 명구(名句)를 잘도 토해내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王侯將相寧有種乎), 제비와 참새 같은 작은 새가 어찌 홍곡의 뜻을 알리오(燕雀安知鴻鵠之志哉)’ 등 신분에 대한 자의식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의 말이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 오늘날까지 전한다.
▷중국 베이징대의 린젠화 총장이 4일 개교기념식에서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훙후(鴻鵠)를 훙하오(鴻浩)로 잘못 읽어 구설에 올랐다. 그는 “베이징대 학생은 스스로 분발해 홍곡지지(鴻鵠之志)를 세워야 한다”고 말할 시점에 잠시 머뭇거린 뒤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떠올렸는지 홍호지지(鴻浩之志)라고 말해 버렸다. 그는 다음 날 “중학생 시절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정상적 교육을 받지 못해 실수를 했다”고 사과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는 총리 시절 ‘한자 못 읽는 총리’로 조롱받았다. 그는 2008년 모교인 가쿠슈인(學習院)대를 찾아 강연하면서 “중일(中日) 간에 이만큼 빈번히 정상이 왕래한 적이 없다”는 대목의 일본식 표기 빈번(頻煩)을 한자쓰(煩雜·번잡)라고 잘못 읽었다. 일본에서 한자는 훈독과 음독이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 실수하기 쉽다고 하지만 이 경우는 빈(頻)이란 한자를 읽지 못한 것이 분명했나 보다.
▷우리나라는 한자도 한글로만 쓰는 문화가 돼 버려 뜻을 모를지언정 한자를 잘못 읽는 실수는 드물다. 다만 교수 출신인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지난달 검경 수사권 관련 발표를 하면서 구동존이(求同存異)를 구존동이(求存同異)로 잘못 말해 뜻을 알 수 없게 만들었는데도 그대로 받아쓴 언론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 과거 일본식 B급 한자로 의심되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이란 말도 썼다. 목적어가 동사 뒤에 나오는 한자의 문법을 안다면 이런 엉터리 한자는 쓰지 않아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