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비슷한 모습을 종종 본다. 핵심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감히”와 “당신의 자기만족일 뿐 내가 원한 건 아니었다”의 대립. 여기에 성(姓)이 다른 식구가 생기고 내 집 마련, 양육, 간병 등 경제사회학적 문제가 겹치면 기껏 5∼6명인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진다. 일본 유명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가족을 ‘남이 안 보면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로 정의한 이유다.
미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최근 일본의 ‘가족 대여(rent-a-family)’ 산업을 집중분석했다. 홀몸노인, 싱글맘, 과년한 처녀총각 등이 회당 수십만, 수백만 원을 내고 배우자, 자녀, 약혼자 등을 빌린다. 고객이 원하면 자녀의 학교 상담에도 동행하고 가짜 결혼식도 가능하다.
“대여 딸과의 대화를 통해 진짜 딸이 왜 집을 나갔는지 조금 이해하게 됐다. 딸에게 계속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곧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니시다 씨의 말이다.
다소 기괴하거나 소름 끼칠 수 있다. 과연 바다 건너 일이기만 할까. 우리도 ‘식구(食口)’의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명절이 아니면 다 같이 모이기도 힘들고 모인들 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바쁘다. 심심하면 등장하는 존속살인과 친부모의 아동학대 사건은 어떤가. 엄부자모(嚴父慈母), 희생, 헌신, 효심 등이 대표했던 기존 가족제도는 싫든 좋든 박물관 속 유물로 전락했다. 역설적으로 그럴수록 가까운 이의 사랑, 신뢰, 지지를 갈구하는 수요는 더 늘어난다.
현대사회학의 기념비적 결과물인 ‘하와이 카우아이섬 종단 연구’. 미 심리학자 고(故) 에미 워너가 이끄는 연구진은 1955년 범죄와 알코올 중독이 만연한 카우아이섬의 신생아 833명이 18세가 될 때까지 추적했다. 훗날 그중 특히 더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의 삶을 살펴봤더니 놀랍게도 72명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훌륭한 사회인이 됐다. 비결은 단순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을 믿어주고 응원해준 단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 그 버팀목은 가족, 선생, 지인, 친구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돈 없는 부모와 공부 못하는 자식을 서로 사람 취급 안 하는 가정에서 버팀목이 생겨날 리 만무하다. 또래집단, 회사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피가 섞였든 섞이지 않았든 우리는 다른 이에게 버팀목 노릇을 하고 있을까.
하정민 디지털뉴스팀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