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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윤승옥]류현진의 어깨와 허벅지… 순망치한과 욕속부달

입력 | 2018-05-09 03:00:00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근육과 인대, 신경이 그물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어깨 수술을 받은 투수가 예전 기량을 회복할 확률은 7%에 불과하다. 2015년 어깨 수술을 받은 류현진은 그 바늘구멍을 통과한 행운아였다. 구속은 약간 떨어졌지만, 더욱 정교한 투구로 시즌 3연승을 달리던 참이었다. 팀의 실질적인 에이스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다시 주저앉은 게 그래서 더 아쉽다. 류현진은 3일 애리조나와의 경기에서 투구 도중 사타구니 쪽 근육(내전근)이 찢어졌다. 내전근은 공을 던질 때 하체 동작에 관여하는 핵심 근육이다. 부상이 생각보다 심해 전반기에는 복귀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재활은 변수가 많아 장담할 수 없는데, 예정된 시점보다 빨리 마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깨와 멀리 떨어진 사타구니. 서로 관계가 없는 부위라, 이번 부상은 우연한 불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트레이닝 전문가들은 두 곳이 무관치 않다고 말한다. 투수는 상체와 하체에 힘을 최적으로 배분해야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다. 당연히 한쪽 부위가 약해지면, 다른 쪽에 부담이 커진다.

류현진의 경우 수술받은 어깨가 조심스러우니, 하체를 더 강하게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하체도 어깨 재활 기간에 가동률이 떨어져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어깨 수술을 받은 투수들이 추후 사타구니 부상까지 겪는 사례가 생기는 이유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인 것이다.

그렇다고 부상이 숙명은 아니었다. 피할 수도 있었다. 부상은 예고 없이 방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몸은 사전에 위험신호를 보내, 대비할 기회를 준다. 한 전문가는 “류현진이 이 정도 부상이라면 사전에 여러 번 통증을 느꼈을 것이다. 특히 다치기 직전에 그 통증이 강했을 텐데 그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하체에서 만들어내는 힘은 확실히 투구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투수는 공이 좋으면, 그 감각에 집착하게 된다. 어지간한 통증은 무시한다. 그래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몸이 못 버티는 지점에 이르면 탈이 난다. 부상 경험이 적은 선수라면 혹 모를 수 있다. 그런데 류현진은 2016년 어깨 재활 과정에서도 사타구니에 부상을 당한 선수다.

문제는 상황이었다. 류현진은 어깨 수술로 2년 동안 존재감 없이 숨죽여 지냈다. 올해는 뭔가를 보여줘야 할 시점이었다. 특히 올 시즌이 끝나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게 돼 대박이 그려지고 있었다. 소속팀 LA 다저스는 연패 중이라 그날 등판에 시선이 집중됐고, 하필 상대는 가장 껄끄러운 애리조나였다.

선수가 통증을 인식하면 우선은 해당 부위에 힘이 덜 가도록 조절한다. 또 한 번쯤 흐름을 끊고 상태를 점검하거나, 후일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날 컨디션이 좋아 보였던 류현진은 돌아가지 않았다. 이해는 가지만, 빨리 가려다 오히려 도달하지 못했다. 욕속부달(欲速不達)이었다.

다시 지난한 재활이 시작됐다. 근육이 붙는다 싶으면 선수들은 빨리 복귀하려고 조바심을 낸다. 서두르면 또 다칠 수 있고, 그러면 복귀 일정만 늦춰진다. 급할수록 꼭 돌아가야 한다. 또 어깨와 사타구니 근육이 이미 순망치한의 관계가 된 이상, 앞으로 부담이 더 커질 어깨도 신경을 써야 한다. 부상의 원인이었던 두 개의 사자성어. 부상을 이겨낼 키워드가 되는 셈이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