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당뇨 환자가 한 달 동안 맞아야 하는 인슐린 주사량을 표현한 포스터. 이 외에도 수시로 혈당을 체크하기 위해 바늘을 하루 최대 20번 찔러야 한다. 대니재단 제공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대니엘라는 제1형 당뇨병을 앓았다. 제1형 당뇨병은 어릴 때 췌장이 망가진 탓에 혈당의 오르내림이 급격해 고혈당과 저혈당을 수시로 부르는 질환이다. 특히 그녀의 저혈당은 밤낮을 가리지 않아 취침 중 혈당이 심하게 내려가면서 사망했다. 제1형 당뇨병으로 갑자기 혈당이 떨어져 사망하는 것을 ‘침대사망증후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녀의 안타까운 죽음은 오래지 않아 호주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2012년 대니엘라의 부모는 자신의 딸에게 닥친 불행이 다른 아이들에게서 벌어지지 않도록 ‘대니재단’을 만들었다. 2015년 대니재단은 21세 이하 연속혈당측정기 국가지원을 위한 국회 청원 행사를 열었다. 행사장 벽에는 160여 명이나 되는 침대사망증후군 희생자의 사진이 내걸렸다. 이 일로 제1형 당뇨병의 심각성을 호주 정부가 인식했다. 이후 연간 400만 원에 이르는 연속혈당측정기를 제1형 당뇨병을 앓는 청소년과 아동에게 전액 무료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호주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제1형 당뇨병을 앓는 아이의 삶을 바꿔 보고자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선 김미영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2015년 연속혈당측정기가 아이와 가족의 ‘삶의 질’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해외에서만 판매하는 이 기기를 직접 구매해 사용법을 익혀 아이에게 사용했다. 또 주변의 환자와 부모에게 이 기기의 사용법을 전수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녀는 스마트폰과 연동해 언제 어디서나 아이의 혈당을 쉽게 체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김 씨의 삶은 달라졌을까? 매우 달라졌다. 그녀는 현재 ‘무허가 의료기기의 사용과 타인 판매’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국내 보건의료체계가 제때 연속혈당측정기 같은 해법을 제공했다면 김 씨가 검사 앞에 앉는 일은 원천적으로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제1형 당뇨병 아이들은 하루에 많게는 20번이나 고사리 같은 손을 바늘로 찔러 피를 뽑고 또 다른 바늘로 인슐린을 주사하고 있다. 그래도 잡히지 않는 혈당 때문에 건강과 자신감을 잃고, 마음껏 뛰어놀 수 없어 또래들로부터 멀어져 간다. 자신의 질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로 인해 불결한 화장실에 숨어 인슐린 주사를 맞는 경우도 많다. 집에서는 아이의 부모는 늘 비상대기다. 잠을 자다가도 아이를 흔들어 깨워 의식을 확인한다. 잠든 아이의 손끝에서 피를 뽑아 혈당을 확인하는 일이 일상이다.
이 문제를 풀고자 정부는 지난해 11월 ‘제1형 당뇨병 어린이 보호대책’을 내놓았다. 소아당뇨병 환자의 실태를 파악하고, 아이들을 돕기 위한 인력과 인프라를 확충하고, 이 질병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소식을 접한 환자 부모들은 “정부의 추가 지원으로 고생을 한결 덜 줄 알았는데 허무하다”고 했다. 소아당뇨 어린이들은 또다시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손끝에서 피를 뽑으며 정부의 추가 지원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소아당뇨 보호대책에 정작 어린이는 빠져 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