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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아이 좀 키우고 오겠습니다!"

입력 | 2018-05-09 19:01:00


"남편이 집에서 아이 보고 있어요. 육아휴직 냈거든요."

아직은 어색하면서도 당혹스러운 말이다. 우리나라 직장 내 남성의 육아휴직이 그리 흔한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 남성의 육아휴직 제도가 도입된 지 22년이나 지났지만, 지난 해 신청자는 고작 1만 명에 머물렀다. 이마저도 3명 중 2명은 300인 이상 대기업에 치중돼 있다. 육아휴직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육아휴직을 신청한 가비아 진성혁 씨(출처=IT동아)


아빠의 용기, "1년 간 아이 좀 키우고 오겠습니다"

경기 판교에 위치한 IT솔루션 기업 '가비아'에 근무하는 진성혁 씨는 지난 해 과감하게 회사에 육아휴직계를 냈다. 원래 그의 아내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내 아이를 돌보고 있었는데, 대기업에서 팀장 직책을 맡고 있는 터라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측으로부터 복귀 요청이 잦아졌다.

여느 맞벌이 부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거나 어린이집에 보낼 수 밖에 없지만, 어느 것도 만만하지 않다. 무엇보다 매달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하기에 경제적 부담이 가장 크다.

이에 진 씨는 육아휴직 관련 제도와 법규를 인터넷에서 상세하게 찾아 봤다. 물건 구매 후 반품 절차가 귀찮아 그냥 사용하는 그였지만, 자신의 자녀와 관련된 일이라 육아휴직상담센터 등을 찾아 문의도 했다. 아빠도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이때 알았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진 건 '아빠의 달'이라는 제도다. 엄마가 육아휴직을 사용하다가 아빠가 이를 이어받아 사용할 경우, 아빠의 첫 3개월 육아휴직 급여를 통상임금의 100%(최대 200만 원)까지 지원하는 '육아휴직 보너스' 제도다.

고용보험법 시행령에 따라, 한 아이를 기준으로 엄마 1년, 아빠 1년으로 총 2년 기간으로 신청할 수 있으며, 둘째 이상의 자녀라면(2017년 7월 1일 이후 출생) 최대 200만 원을 지원한다. 일반 근로자 외 공무원 등도 이에 해당된다. 만약 회사가 육아휴직을 거부하면 이를 신고할 수 있다.  

진 씨의 경우 이후 육아휴직 급여까지 계산하니, 육아 도우미에게 자녀를 맡겼을 때보다 진 씨 자신이 육아휴직을 신청해 육아를 전담하는 편이 훨씬 유리한 듯했다. 금전적 이득은 차치하고, 유아 때부터 자녀와 정서적 유대감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을 더 의미 있게 여겼다.

진 씨는 아내와 의논 후 육아휴직 결정을 내리고 이를 회사에 전했다. 일반적인 휴직신청이 아니라서 회사 동료들도 처음에는 당황하는 듯했지만, 가비아 인사팀은 흔쾌히 이를 승낙했다. 휴직계를 내고 사무실을 나서니, 한 팀 선배는 육아가 업무보다 몇 배는 힘들 거라는, 걱정인지 조언인지 격려인지 모를 말을 했다.

당초에는 1년 기한이었는데 9개월로 조기 마무리하고 업무에 복직했다. 예상을 뛰어 넘는 육아 스트레스로 몸무게는 13kg이나 빠졌다. 진 씨는 복직 출근한 날, 그 선배에게 '군대를 한번 더 갔다 오는 게 낫겠다'는 말로 육아 경험을 일축했다.

회사로 돌아온 진 씨는, 육아휴직 전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사내 업무와 일상이 매순간 즐겁고 감사할 뿐이다. 남성의 육아휴직 신청으로 인한 회사 내 불이익은 전혀 없었고, 현재 9개월 전 그 업무, 그 자리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9개월 간 자신이 느꼈던 '뼈 저린' 육아의 고충과 스트레스를 수십 개월 이상 오롯이 견뎌 내는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이 그저 위대해 보였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아빠의 평균 육아휴직 기간은 약 6.6개월로 엄마(10.1개월)보다 4개월 가량 짧다. 아빠의 경우 3개월 이하 단기 육아휴직 사용 비율이 41%에 달한다. 이는 아빠가 가구의 주 소득자인 경우가 많고, 아빠의 장기 육아휴직을 꺼리거나 승인하지 않는 기업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진 씨는 "육아휴직이라 하면 엄마에게만 해당되는 제도로 알고 있었는데, 육아를 전담하면서 아이와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다"면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휴가제도인 만큼 '직장대디'들이 마음 편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직장문화가 조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IT전문 이문규 기자 mun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