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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發 ‘신흥국 위기설’ 확산… 한국은 괜찮을까

입력 | 2018-05-10 03:00:00

아르헨, IMF에 긴급 구제금융 신청




아르헨티나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외국인 자본이 대규모로 빠져나가면서 자국 통화가치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영향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돈줄을 죄는 속도가 빨라지면 신흥국의 외환 사정이 악화될 수 있다는 ‘6월 위기설’도 증폭되고 있다.

한국은 정부 부채가 적고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큰 만큼 아르헨티나 사태로 충격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 다만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가 점차 높아지는 만큼 한국은행이 7월에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 외국인 떠나는 아르헨티나

8일(현지 시간)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IMF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아르헨티나가 IMF에 요청한 구제금융 규모가 300억 달러 수준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아르헨티나가 IMF 구제금융을 요청한 건 외국인 투자 자금 이탈로 화폐 가치를 방어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외환보유액은 2017년 말 기준 약 450억 달러로 한국(3892억 달러)의 약 11.5% 수준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외국인 자금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면서 올해에만 보유 외환의 10% 이상을 소진했다. 이에 중앙은행 기준금리를 열흘 새 연 27.25%에서 40%로 끌어올렸지만 페소화 가치 폭락을 막지 못했다.

○ 터키 브라질로 전염 우려

아르헨티나처럼 외국인 자금 의존도가 높은 터키에도 위험 신호가 울리고 있다. 터키 리라화는 최근 1개월 동안 달러 대비 가치가 5% 이상 추락하며 사상 최저치에 이르렀다. 10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브라질은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올 들어 헤알화 가치가 달러 대비 6% 이상 하락했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도 미국의 경제제재 여파로 하락하는 추세다. 아시아권에서는 유가 상승으로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가 예상되는 인도도 위험군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 위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위기가 발생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미정 국제금융센터 연구위원은 “아르헨티나 경제의 취약성 때문에 위기가 나타났을 뿐 다른 신흥국으로 전염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위기설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유가 상승이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면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회귀하는 ‘머니 무브’(자금 이동)가 본격화하면 신흥국으로 위기가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발 충격이 확산되면 국제금융시장에서 신흥국에 속하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신흥국 투자에 불안을 느낀 외국인 자금이 대거 이탈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증시에 투자한 외국인은 지난달 말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로 며칠 순매수했지만 최근엔 다시 ‘팔자’로 돌아섰다. 유가증권시장에서 5월 외국인 순매도 금액은 약 7700억 원에 이른다.

○ ‘셀 코리아’ 막으려 금리 인상 가능성

아직까지는 한국이 받을 충격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신환종 NH투자증권 FICC리서치센터장은 “한국은 외화보유액이 탄탄하기 때문에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다고 해도 일부일 것”이라며 “북-미 회담 상황이 좋아지면 오히려 자금이 더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0.24% 하락하며 아르헨티나 사태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원-달러 환율도 4.4원 오른 달러당 1080.9원에 거래돼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국제금융센터는 4월 16일 이후 글로벌 투자자들이 신흥국 시장에서 55억 달러를 회수했으며 이는 2013년 긴축 발작 때보다 더 빠른 속도라고 지적했다. 신흥국에서의 자금 유출이 언제든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한은이 외국인 자본 이탈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이주열 한은 총재의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등이 맞아떨어질 때는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줄여야 하는 게 맞다”는 발언이 금리 인상의 사전 신호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에 한은은 “일반적 수준의 발언”이라며 이 같은 해석을 경계하고 나섰지만 금융권에서는 7월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것이란 전망에 점차 무게를 싣고 있다.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연 1.5%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1.5∼1.75%보다 낮다. 연준은 6월에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는 최대 0.5%포인트로 벌어진다.

이건혁 gun@donga.com·김성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