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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의 미술시간]지나치게 친절했던 남자, 클림트

입력 | 2018-05-10 03:00:00


구스타프 클림트作. 메다 프리마베시의 초상. 1912∼1913년.

‘키스’ ‘다나에’ ‘유디트’ 등 황금빛의 화려하고 관능적인 여성 그림으로 잘 알려진 구스타프 클림트. 미술사에서 클림트만큼의 명성과 사랑을 얻은 오스트리아 화가는 전무하다. 이 그림은 에로틱한 여성 그림으로 악명 높았던 클림트가 쉰 살에 그린 아홉 살 여아의 초상화다. 도대체 이 소녀는 누구이기에 거장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걸까?

“(작품의 주제로서) 나 자신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성을 그림의 주제이자 영감의 원천으로 여겼던 클림트가 한 말이다. 그가 그린 여성들 중엔 직업 모델도 많았지만 부유한 상인의 부인이나 딸, 귀족 가문의 여성도 있었다. 예외가 있긴 했지만 클림트 그림 속 여성들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팜 파탈’이 되기 일쑤였다. 그는 평생 독신이었지만 수많은 모델과 염문을 뿌렸고, 14명 이상의 사생아를 둘 정도로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

그런 거장의 화실에서 당당한 인격체로서 똑바로 서서 화가를 응시하고 있는 이 소녀의 이름은 메다 프리마베시. 부유한 은행가이자 유리 제조업자였던 오토 프리마베시의 딸이다. 빈 예술가들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오토는 이미 클림트와 친분이 있었기에 자연스레 딸의 초상화를 주문했다. 어린아이 초상화는 클림트의 취향이 아니기도 했고, 후원자의 딸이니만큼 평소 스타일대로 그릴 수는 없었을 게다. 심적 부담이 컸던 것일까? 클림트는 이 그림을 위해 200점이 넘는 스케치를 했다고 한다.

1987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메다는 당시를 회상하며 클림트를 ‘지나치게 친절’했던 남자로 묘사했다. 어린 메다가 책 한 권을 내밀며 친필 사인을 부탁했을 때, 클림트는 이렇게 써 주었다. “너를 보지 않으면 낮도 밤과 같아. 너를 꿈꾸면 난 더 행복해져.” 그녀의 말대로 클림트는 아홉 살 뮤즈에게조차 지나치게 친절했던 ‘남자’였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