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논설위원
김정은은 얼마 전 방북 중국인들의 교통사고 참사에 ‘깊이 속죄한다’는 위로 전문을 중국 지도부에 보냈고, 다롄에서 귀국하는 길에는 ‘경애하는 습근평 동지께서 부디 건강하시기를 삼가 축원한다’는 감사 서한을 보냈다. 이 정도면 “노벨 평화상은 트럼프 대통령 몫”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과공(過恭)은 비할 바가 아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시진핑이 보낸 특사의 면담조차 거부하던 김정은이다. 무엇이 그의 태도를 이렇게 180도 돌변하게 만들었을까.
최근 북한의 미국 접근은 분명 중국을 겨냥한 ‘탈(脫)중국 자주’ 행보였다. 4·27 판문점 선언에 6·25전쟁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을 명시해 중국을 배제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김정은이다. 할아버지 김일성 시절 이래 중국과 소련 사이를 오가는 등거리 외교는 북한의 전통적 외교 책략이었다.
하지만 그런 저자세 외교가 바로 김정은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달리 길이 없기 때문이다. 국제 정치는 몇몇 강대국이 주도하는 독과점(獨寡占) 시장 체제다. 강대국의 불편은 참을 수 없는, 그래서 세계적 격변의 요인이 되곤 한다. 하지만 국제 정치라는 버스에 약자 배려석 같은 것은 없다. 김정은도 늦게나마 이런 현실을 절감했다면 그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미관계라고 그리 다르지도 않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당초 외교부 장관 물망에 올랐지만 “나이도 있는데…”라며 고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해외 출장이 적을 법한 안보실장 자리가 나을 거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한데 불과 한 달 사이에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러 워싱턴에 세 번이나 다녀와야 했다. 최근 방미는 볼턴의 긴급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지만 보자고 하면 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굳이 국제 정치 현실이 아니더라도 아쉬운 쪽이 우물을 파야 한다.
최근 한반도 정세의 변화는 김정은의 비핵화 결심으로 시작됐다지만 그 미래는 동북아 세력 균형을 좌우하는 미중 두 강대국 간 조율 없이 쉽게 그려질 수 없다. 특히 중국은 평화체제 논의에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주한미군 문제를 포함한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일 게 분명하다. 그러다 보면 정작 한반도의 진짜 당사자인 남과 북은 주변으로 밀려나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한반도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보더라도 낙관론을 경계한다. 지금부터야말로 정신을 바짝 차릴 때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